불법체류 중국인 운전자 강제추방 면한 이유는?

  • 김기태
  • |
  • 입력 2018-05-18 07:29  |  수정 2018-05-18 07:29  |  발행일 2018-05-18 제7면
고의 추돌사고 당한 뒤
1천만원 요구 협박당해
견디다 못해 경찰 신고
“범죄피해 구제받을 권리”

포항에 살고있는 중국인 A씨(55)는 최근 악몽같은 일을 겪었다. 불법체류자를 노린 범행의 타깃이 된 것. 그는 지난달 26일 오전 6시쯤 포항 북구 장성동 한 골목길에서 운전을 하던 중 뒤따라오던 차량에 의해 추돌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적반하장, 뒤 차량 운전자 B씨(38)는 오히려 1천만원을 내놓으라고 A씨에게 으름장을 놨다. B씨 일당이 A씨가 불법체류자임을 알고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해 강제 추방시키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어쩔 수 없던 A씨는 돈을 마련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A씨는 이 억울한 일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다. 자칫 경찰에 신고했다가 강제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지인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지인은 다시 평소 알고 있던 경찰관에게 도움을 구했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경찰은 A씨를 설득해 사건 전모를 밝혀냈다. 이어 같은날 오전 11시45분쯤 북구 흥해에서 A씨로부터 돈을 건네받던 B씨 일당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경찰은 17일 공갈 혐의로 이들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불법체류자인 A씨 차량을 일찌감치 범행 대상으로 노렸다. B씨는 골목길에서 A씨 차량을 500m쯤 따라가다가 일부러 접촉 사고를 낸 뒤 “돈을 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합의금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불법체류자 A씨는 이 일로 인해 본국으로 추방되진 않았다. 과거엔 경찰이 불법체류자를 확인하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병을 넘겨야 했다. 그러나 2013년 3월1일 출입국 관리법 개정에 따라 ‘범죄 피해자’에 대해선 경찰의 법무부 통보 의무가 없어졌다.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법에 따라 억울한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강제 출국 ‘통보의무’가 면제되는 범죄는 살인·상해·폭행·과실치사상·학대·체포·감금·협박·절도·강도·사기·공갈 등이다. 이번 사건도 경찰이 불법체류자 통보의무 면제제도를 A씨에게 적극 알린 게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포항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불법체류자 통보의무 면제제도를 통해 공갈·협박을 당한 불법체류 외국인을 범죄 피해로부터 구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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