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가 고이 잠든 ‘원시인’을 깨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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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8   |  발행일 2018-05-18 제21면   |  수정 2018-05-18
[기고] 누가 고이 잠든 ‘원시인’을 깨우는가
전해진 (좋은학교 바른교육학부모회 대구지회장)

대구시 달서구 상화로를 지나다 보면 수목원 맞은편에 누워 있는 거대한 원시인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로 20m, 세로 6m인 이 조형물은 ‘광고천재’로 알려진 이제석씨의 예술작품이다. 달서구가 이 작가에게 의뢰해 제작했다.

달서구는 최근 몇 년간 지석묘, 석관묘, 선돌, 고인돌 등의 발굴로 청동기, 구석기 유적을 재조명하는 테마관광 특화거리 조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달서구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창조적 지역관광 자원화와 역사성 및 차별성 있는 문화시설이며 대구의 새로운 관광지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달서구는 5천년의 대구 역사를 2만년으로 끌어 올린 선사유적의 발굴로 대구 최초의 주거지로 주목받고 있는 선사문화를 알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선사시대로’라는 테마를 정했다. 이로써 관내에 흩어져 있는 선사유적을 진천동 선사유적 공원을 포함한 4개 공원 및 일대로 연결함으로써 테마거리 등 선사시대 탐방로를 집중 조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공원별, 탐방코스별 스토리텔링과 특성화사업을 추진해 방문객과 지역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2만년을 이어온 ‘선사시대로’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홍보마케팅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 ‘김광석거리’처럼 특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까지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원시인 조형물과 관련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보기 흉하다” “야간에 섬뜩하다” 등 집단민원이 제기되고 주변 상가와 특정 종교단체의 반발이 이어져 급기야 원시인 조형물 철거를 두고 지난 3일 달서구의회에서 청원안건으로 다루게 되었다. 의회는 갑론을박 끝에 철거안을 ‘얼치기 가결’로 처리했다. 하지만 의회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했다. 철거에 이의를 제기한 모 의원은 “원시인 철거 청원은 구청장이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에 대한 이견으로 심도 있는 판단을 위해 다음 회기로 넘길 것”을 요청했고 또 다른 의원은 “의견이 분분하다 보니 여기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의원이 없는 것 같으니 무기명 투표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일부 의원들이 제청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의장이 상임위의 원안대로 가결하자 불만을 품은 의원들은 바로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든 유지든 정상적인 절차가 담보돼야 할 것이고 집행부와 의회는 전문가와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본다. 올 2월에 완공된 원시인 조형물을 이제 와서 급하게 철거를 주장하는 의회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원시인 조형물이 위치한 달서구을(월배권)지역 구의원들이 유독 철거안에 적극적인 것을 보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위해 ‘목소리 큰 소수’의 의견을 듣고 침묵하는 다수 지역민의 표는 계산에 넣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달서구의회에 한 가지 당부를 하고 싶다. 소위 ‘선진지 견학’ 등 단체가 해외로 나가면 가장 먼저 파리 에펠탑에 가서 설명을 듣기 바란다. 비교 대상은 다르지만 에펠탑도 처음에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명물로 변했다. 무엇이든 철거는 쉽지만 새롭게 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람의 치아도 원치아가 아니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단기간의 평가로 결정 낼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오판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원시인 철거와 관련해 의회는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고 모든 비용은 주민의 혈세로 이뤄진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철거가 분초를 다투는 긴급을 요하는 일은 아니니 전문기관과 주민공청회를 통해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함께 느껴야 할 것이다. 집행부는 구민과 보다 많은 소통으로 구민의 이해를 구하고 구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를 바란다. 전해진 (좋은학교 바른교육학부모회 대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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