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네 (아)저씨네] 버려야 하는 이유

  • 김수영
  • |
  • 입력 2018-05-18   |  발행일 2018-05-18 제38면   |  수정 2019-03-20
20180518

요즘 남편과 실랑이가 잦다. 봄을 맞아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대대적으로 비우기 작업에 나선 때문인데, 남편이 나를 영 못마땅해하는 눈치다. 내가 버리려 내놓은 물건들을 죄다 검열을 한다. 그러고는 쓰레기통에 들어갈 대상품목 중 10~20%를 골라 회생시킨다. ‘당신은 안쓰지만 나는 쓸 것’이라는 주장이다.

“생각없이 사고 나서는 버리는 데 집중한다”고 타박하는 남편과 “버리지 못하고 짐만 늘려간다”는 나의 주장은 심할 경우 설전으로 이어진다. 남편은 “저렇게 버리기 좋아해서…. 버려놓고는 나중에 찾는다”며 “지금 안 쓸 것 같아도 쓰일 데가 있는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예전에 물건을 왕창 버려놓고는 그것을 기억 속에서 까맣게 지워버려 이곳저곳을 찾아헤매면서 애를 태우던 기억들도 제법 있다. 그러니 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은 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을 너무 많이 쟁여놓고 산다.

누군가는 1년 이상 입지 않는 옷은 과감하게 버리라고 충고했다. 결국 옷장에서 몇년간 빛 한번 보지 못하고 재활용수거함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버리는 음식물에 대해 “그냥 버리느냐, 냉장고에 넣었다 버리느냐”의 차이라고 했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변질되어 버리면 음식물에 대한 죄책감이 좀 덜어질 뿐 결국 버리게 된다는 직언이다.

내가 봄맞이 대청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인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였다. 우리 집보다 넓은데도 집에 물건이 별로 없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분은 4년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대대적으로 비우기 작업을 펼쳤다고 했다.

거실에는 벽면용 TV와 소파, 몇개의 화분이 다였고 주방에는 식탁만 있었다. 별다른 장식물 없이 꼭 필요한 물건만 자리를 차지했다. “집안에서 대소사를 쳐내야 되어서 필요한 그릇들이 많을 텐데 부족하지 않으냐”고 여쭈니 “제사상에 쓸 정도의 그릇만 남겨두고 모두 없앴다”고 했다. 남편과 둘이 사는데 행여 자식들이 올까 싶어 이런저런 준비를 해두어봐야 모두 짐만 된다는 것이다.

심플하게 살려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자 아등바등 사모으는데 급급했던, 한번 들어오면 내놓을 줄 몰랐던 나의 욕심이 내심 부끄러워졌다. 내 주위의 물건부터 줄여나가야 내 가슴에 들어찬 욕심도 비울 수 있을텐테, 보이는 것조차 버리지 못하니 안 보이는 것을 어찌 버릴까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식들을 출가 등으로 떠나보내고 난 뒤 집을 좁혀서 가는 분들이 많다. 식구가 적은데 집까지 넓으니 휑뎅그렁해서 더 외롭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비우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집의 규모를 줄이면 자연스럽게 버리는 연습이 될 것이란 말도 곁들였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다. 물질적인 풍요로 별다른 부족함 없이, 오히려 남아서 넘치는 시대에 현대인들 사이에 줄이고 비우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는 것은 왜일까.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게 미덕이었으나 요즘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무절제한 풍족함은 오히려 짐이 되고 욕심이 된다. 물질적인 것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정신적으로는 점점 허기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라고 했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강조했지만 범인에게 무소유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작지만 실속있고 여유있게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는 좀더 쉽고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나이로 볼 때도 이제는 창고가 아닌 휴식공간의 집을 원하는 때가 되었다. 그래서 먼저 비우기부터 해보기로 했다. 비우기가 익숙해진다면 필요없는 물건들을 아무 생각없이 사모으던 습성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소유보다는 경험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보기로 했다. 아마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될 듯하다.

남편의 이야기가 들어있어 남편에게 이런 글을 쓴다니 자신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왜 버릴 수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해. 다음 글에서는 남편의 이유있는 항변(?)을 들어볼까 한다.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