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슈퍼스타, 붓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5-19   |  발행일 2018-05-19 제23면   |  수정 2018-05-19
[토요단상] 슈퍼스타, 붓다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2천600년 전, 인도 지역의 작은 왕국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29세의 나이에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출가하였다. 그리고 6년간의 고행 끝에 붓다, 즉 ‘깨달은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제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고자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오지만, 여러 신분계층의 사람이 모인 탓에 서열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갈등이 끊이지를 않는다. 당시에는 옷과 머리모양으로 신분을 표시하였다. 그래서 고타마는 자신의 문하생들에게 너희는 모두 평등하니 모두 머리를 삭발하라고 명하였다. 이렇게 삭발의식이 시작되어 지금도 불교에 귀의한 모든 자는 삭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타마는 훌륭한 사상가이지, 종교창시자가 아니다. 그가 신격화된 건 후대의 사람들 때문이다. 필자는 그를 탁월한 사상가로 존경하는 것이지, 종교로서 받들지는 않는다. 고타마의 평등사상은 그의 뛰어난 공감능력에 기인한다. 그가 출가를 결심한 이유 역시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의 공감은 사람을 넘어서 모든 생명체로 뻗어나간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평등사상은 당시 엄격한 신분제를 가진 사회의 백성들에게는 파격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으니 당시 기득권사회는 경계를 하면서도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고타마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당대의 슈퍼스타였다.

고타마는 당시의 시스템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이 위협을 받으면 어떤 짓을 해서라도 기득권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 시스템에 충격을 가하면 오히려 백성들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개인 각자의 문제에 파고들었다. 집착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집착을 버리면 욕심을 부릴 일이 없어져 각자 행복에 더 다가갈 수 있으며, 모든 계층, 특히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면 백성들이 더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정치가 많은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다. 왕이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수행자를 만나는 것은 큰 정치적 선전이 되기에, 그의 명성이 멀리까지 미치자 많은 왕들이 그를 만나기를 원하였다. 그는 아무리 먼 왕국의 왕이 뵙기를 청하더라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못가는 사정이 있다면 뛰어난 제자를 보내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왔다. 심지어 인도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인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은 평생 고타마의 제자를 청하며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렇게 그는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수많은 나라에 사상과 설법을 전했다.

고타마의 사상 밑바닥에 이런 평등사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인도에서만큼은 불교가 성행하지 못한 것을 설명할지도 모른다. 신조차도 위계를 가지는 사회에서 기득권자들은 엄격한 카스트제도를 통해 큰 이익을 얻고 있는데, 모든 생명체가 평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그의 사상은 기득권에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인 것이다. 하지만 널리 퍼진 그의 사상과 설법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급기야 그를 신격화하기에 이른다. 그의 사상이 종교화되면서 평등에 대한 이념은 줄어들고 개인의 고통을 구하고 해탈에 이르는 지침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대중성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서 한반도의 고대국가에까지 전해지기에 이른다. 고타마의 평등에 대한 노력은 헛되이 되지 않아 비록 느린 속도로 발전했지만 오늘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평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대두되고 있는 사회의 갑질과 부의 세습 문제를 바라본 아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신분제가 있는 것 같다는 푸념을 했다. 또한 우리가 저항한다고 쉽게 바뀔까 의문스러워했다. ‘애비’로서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이 작은 칼럼으로 대신한다.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