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송홧가루와 미세먼지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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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9   |  발행일 2018-05-19 제23면   |  수정 2018-05-19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중의 나무, 소나무의 학명(Pinus densiflora)은 꽃이 많이 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소나무는 풍매화(風媒花) 중에서도 수꽃을 가장 많이 피우는 수종 중 하나다.

필자가 사는 상주 같은 농촌에서는 봄에 얼마나 많은 소나무 꽃가루가 날리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수꽃이 한창 피는 5월 초에는 사방이 온통 송홧가루투성이다. 차 지붕은 물론 내부까지 들어오고 집안의 가구 표면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쌓이기도 한다.

수꽃이 무르익는 이 시기에 소나무를 가까이서 보면 새로 나온 가지에 노란 수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관찰된다. 그 수꽃은 얇고 투명한 막으로 많은 꽃가루를 싸고 있다. 소나무 수꽃은 꽃이라기보다 꽃가루 덩어리다. 날씨가 좋으면 작은 공기의 흔들림에도 가지 끝의 웅화수에 달린 여러 개의 주머니가 열리면서 노란 송홧가루가 터지듯 날아 오른다.

주머니에서 나온 일단의 가루는 속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는 모깃불의 연기처럼 공기의 흐름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흩어진다. 어릴 때는 보자기로 작은 소나무 가지를 감싸고 흔들어서 송홧가루를 채취했다. 어머니는 그 송홧가루를 조청으로 반죽해서 다식을 만드셨다.

송홧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올봄에는 송홧가루의 성가심을 덜 느끼고 지난 것 같다. 되돌아보니 잦은 비와 미세먼지 덕(?)인 듯하다. 비가 송홧가루의 비산을 막고, 미세먼지가 무서워 창문 단속을 꼼꼼히 하다보니 송홧가루의 침투가 적었던 것이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미세먼지 대책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각각 △미세먼지 해결과 △미세먼지 걱정 없는 대한민국을 10대 공약에 넣었다. 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 서울시장선거에서는 미세먼지 잡는 자가 표심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야 간에 미세먼지 공약 표절시비까지 일고 있다. 미세먼지가 폐질환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조기 치매까지 부른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어쩌다가 금수강산이라는 우리나라가 먼지강산이 됐는지, 미세먼지 없는 시대가 오기는 오는 것인지. 이러다가 소나무를 보자기로 감싸고 흔들면 송홧가루 반 미세먼지 반이 나오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뿌연 하늘만큼이나 암담한 기분이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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