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인물열전’ .2] 항일 저항시인 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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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4   |  발행일 2018-05-24 제29면   |  수정 2018-06-15
‘빼앗긴 들의 봄’을 갈망했던 그는 ‘눈물의 열정시인’
(1947년 11월19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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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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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을 비롯해 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글벗들은 모임을 갖고 이상화를 기리기 위해 시비를 달성공원에 세우기로 했다. (영남일보 1947년 1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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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출생지이며 종언지인 대구 달성공원 구내에 시비를 세울 예정이라 하는데 착공은 오는 20일경이라 하며 시비에 새길 시구는 그의 대표작이며 18세 때의 시라고 전하는 ‘나의 침실로’ 중에서~’(영남일보 1947년 11월19일자)


나라 뺏긴 설움에 좌절 않고
일제에 맞서 저항정신 표출
3·1운동땐 대구 학생봉기 계획

47년 달성공원에 세운 시비엔
18세때 쓴‘나의 침실로’ 새겨



시인 이상화가 세상을 떠나고 몇 해 뒤 생전의 글벗들이 모였다. 대구 달성공원에 그의 시비를 세우기로 했다. 수필가 김소운이 앞장섰다. 하지만 제막식은 애초 계획인 1947년 12월보다 늦은 이듬해 3월에야 열렸다. 건립비용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은 듯하다. 애초 20만원이던 비용은 5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자고 나면 치솟는 당시의 물가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상화의 저항정신은 일찍이 대구 부민들에게는 희망의 불씨였다. 1933년 4월1일자 조선중앙일보에는 ‘휴교 중인 교남학교 개교의 서광’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의 대구 교남학교(현 대륜중고)는 경영난으로 폐교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교편을 잡기로 하자 ‘서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전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식민통치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 민중에게 희망을 심는 그의 저항정신을 알아본 것이었다.

이상화는 이보다 앞서 3·1운동 때는 대구에서 학생봉기를 계획하기도 했다. 일본 유학을 갔다 와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꾼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창립멤버가 됐다. 1937년에는 일제경찰에 붙잡혀 구금생활을 했다. 일본에 맞서 싸울 요량으로 망명해 중국군 장군이 된 맏형 이상정을 몰래 만나고 돌아온 것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이상정은 광복 두 해 지난 1947년 9월 대구 공회당에서 귀국보고회를 가졌다.

이렇듯 그 집안의 가풍이 그랬다. 그의 동생 이상백은 일제 때 건국동맹에서 광복 투쟁을 했다. 그러나 이 단체를 주도한 몽양 여운형이 암살되자 정치에 거리를 두고 학자의 길에 매진했다. 둘째 동생 이상오는 광복 직후 경북문화예술연맹에 참여했다. 또 대구 키네마극장 관리대표를 맡았을 때 무대에 올린 연극의 주연배우가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상화는 열정과 희망의 시인이었다. 시비 건립 기사에는 그를 ‘눈물의 열정시인’으로 부르고 있다. 나라 뺏긴 설움에 좌절하지 않고 일제에 맞서는 저항정신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교남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려 하자 희망의 빛인 ‘서광’으로 기사화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눈물의 열정시인’은 ‘희망의 저항시인’과 같은 셈이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2월 전국 문학자대회가 열렸다. 새로운 민족문학 수립을 위해 일제잔재와 봉건유물의 청산이 과제로 떠올랐다. 우선은 일제의 압정 아래 우리 민족문학을 북돋우기 위해 고투하다 쓰러진 문학자를 찾아냈다. 모두 23명이었다. 일제에 맞서 민족의 혼을 살리려 열정을 바친 민족문학자들이었다. 그는 이육사·백신애 등과 함께 그 이름 속에 들었다.

‘오십년 시독(詩讀)사에 높은 그 이름 상화와 고월, 영원히 이 겨레의 심금을 울릴 값있는 문필’. 1951년 백기만이 엮은 ‘상화와 고월’이라는 시집의 광고 문구다. 그는 광복을 못보고 1943년 43세로 눈을 감았다. 겨레에 심금을 울린 그가 마돈나의 밤이 주는 꿈은 정작 찾기나 한 건지. 시비에 새겨진 ‘나의 침실로’의 한 구절이다.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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