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슨 벤자민의 뷰파인더] 문재인케어, 민주주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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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5   |  발행일 2018-05-25 제22면   |  수정 2018-05-25
한국인 복지에 중요한 경우
의료서비스 접근평등 필수
의료비용과 사이 절충문제
여러 이해관계자 의견 반영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 있다
[톰슨 벤자민의 뷰파인더] 문재인케어, 민주주의, 정의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철학 강사

주말 동안 예상치 못한 시위자들이 서울 도심의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문재인정부의 의료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 대한의사협회 의사들이었다. 이들은 미국 보수당에서 빌려온 단어인 ‘문재인케어’의 의료보험 적용범위 확대를 반대했다.

얼핏 의사들의 항의는 이상하게 보인다. 소위 ‘오바마케어’ 이전에는 보편적인 공공의료 보험제도가 없었던 미국과 달리, 한국에는 1989년부터 보편적인 의료보험제도가 있어 왔다.

대한의사협회는 두 가지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건강보험제도 적용범위의 확대에 대한 결정이 일방적으로 내려졌다는 점이다. 특히 대한의사협회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존중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둘째, 새로운 정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 대다수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반대 주장들의 정확성과 진정성 여부에 대해 말할 수는 없으나, ‘정의와 민주주의’ 측면에서 볼 때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대한의사협회는 정책수립 과정이 보다 포괄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한국 의사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견해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책수립 과정이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면 의사만 중요한 이해당사자는 아니다. 다른 의료인, 환자, 가족보호자, 간병인들은 어떠한가?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조슈아 코헨(Joshua Cohen)과 같은 ‘숙의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어떤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또다른 학자 제임스 피시킨(James Fishkin)은 이해관계자들을 포함시켜 논의하였을 때 보다 신뢰할 만하고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심의과정은 하향식 과정보다 타당하고, 더 합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급격히 고령화되는 인구와 그에 따른 건강관리 우려로 인해 한국에서 좀 더 포괄적인 의사결정은 여전히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늘리는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두번째 주장은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질이 더 괜찮은 분야에 더 제한적인 보장범위를 제공하는 것이, 좀 더 떨어지는 분야에서 더 광범위한 보험을 적용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는 분배정의의 문제로 보인다. 의사들의 주장이 너무 단순하다. 의사들은 특정분야에서 상당히 높은 의료수가, 그에 따른 보험적용범위 외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의 잠재적 불평등을 간과한 것 같다. 의료서비스가 한국인의 복지에 중요한 경우 접근의 평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탁월한’ 치료를 위해서라면 어떤 비용이라도 감수해야 하는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접근의 평등’과 ‘의료비용’ 사이의 절충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의 의료비용은 상당히 저렴한 편이며, 한국인들은 의료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토론과 논쟁은 의료서비스의 품질과 접근성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건강보험 적용범위의 확대가 의료보험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선 대한의사협회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접근의 평등’은 건강보험 적용의 범위에 대한 사안뿐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때에, 우리가 사는 곳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의 첫번째 주장은 두번째 주장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포괄적인 정책수립은 ‘의료정책의 정의로움’에 대하여 의사들이 선호하는 견해가 반영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포괄적인 의사결정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러한 사안들을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게 해준다. 민주적 과정을 통한 정책수립이 ‘정책의 정의로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듯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철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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