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스타일 스토리] 젠더리스 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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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5   |  발행일 2018-05-25 제40면   |  수정 2018-05-25
파워풀 女, 뷰티풀 男

‘성’이란 단어만큼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기 조심스럽고 은밀한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성에 대한 관심과 담론이 우리 세대만큼 넘쳐나는 시대가 또 있을까? 최근 패션계에는 ‘성을 초월하는’ ‘성의 구별이 없는’ ‘중성적인’이라는 의미의 성적 키워드가 메가 트렌드로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대중이 열광하는 젠더리스(Genderless) 룩이라는 패션 이야기다.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 착용 화장한 꽃미남
매니시한 슈트·팬츠로 활보하는 걸크러시
性 초월한 트렌드…새로운 스타일로 고착
축구스타 베컴 ‘메트로 섹슈얼’관심 폭발
여배우 틸다 스윈튼, 섹시 젠더리스룩 매료
2018 남성복 컬렉션, 섬세·디테일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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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틸다 스윈튼이 셔츠와 팬츠로 멋을 낸 젠더리스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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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렉터인 닉 우스터의 컬러 파티드 셋업재킷.

요즘 TV를 켜거나 거리에 나가 주변을 돌아보라. 귀고리를 하거나 화려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한 꽃미남이나,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간 매니시(Mannish)한 슈트를 입고 활보하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이들의 패션에서는 단순히 남성적이라든가 여성적이라는, 한마디로 그들의 사회·문화·역사적 본질을 모두 담아내고 정의하기 어려운 입체적인 멋이 느껴진다. 오늘날 성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이유다.

현대패션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sex)에 따라 패션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던 것을 넘어서서 성(gender)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체하고, 서로의 성적 특징과 아름다움을 교차시켜 젠더리스룩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자유로운 세기말의 유쾌한 권위와 악의 없는 모험이자 관습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채택된 젠더리스 패션은 이제 ‘하나의 특별한 현상’에서 ‘또 하나의 멋진 패션스타일’이 되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패션스타일 중 하나로 등극하면서 21세기의 남성은 ‘뷰티풀’해지고, 여성은 ‘파워풀’하게 변하는 터닝포인트를 마련했다.

이처럼 오늘날 패션계는 젠더리스가 남녀 패션 전방위에 미친 영향으로 여성복과 남성복을 지배했던 전형적인 드레스 코드가 점차 붕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컬렉션과 백화점 등 여성복 매장에서는 젠더리스 아이템이 증가하고 있으며, 남성복분야에서는 다소 과감하다 싶은 디자인도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데일리 아이템으로 채택해 전용관을 설치하거나 아이템을 강화하는 백화점과 매장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여성과 남성 패션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라면, 여성과 남성의 의상은 언제부터 성적으로 구분돼 고착화를 이룬 것일까? 중세 이래 여성과 남성의 패션 상징이 치마와 바지로 각각 고정된 이후 인간은 르네상스를 통해 신과의 이성적 간격을 두며 인간 본연의 욕망에 몰입했고, 신의 창조물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개체’로 거듭났다. 이제 인간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패션은 중요한 현상과 목표가 된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에 어필함에 성은 역사 이래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패션은 이러한 인간의 표현에 부응하는 적극적 도구로 등장했다.

20세기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과 남녀 평등에 대한 자각으로 여성복에서 시작된 젠더리스룩의 시초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마리네 디트리히가 ‘모캄보’에서 머스큐린 룩(Masculine Look)을 처음 선보인 이래 1960년대 이브 생 로랑이 섹시한 르 스모킹(Le Smoking) 룩을 발표하며 크로스 커스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1980년대 앤드로지너스룩과 1990년대 젠더리스룩으로 20세기를 관통하며 광범위하게 변화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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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젠더리스룩.

반면 남성 젠더리스룩의 유행은 1960년대 유니섹스모드에서 시작돼 대중적 파급력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으로 대표되는 메트로 섹슈얼(Metro Sexual)로 본격화됐다. 남성들의 가치 변화와 패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관대해지고, 패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젠더리스룩은 점차 보편적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지드레곤과 같은 젠더리스 스타는 샤넬의 여성용 재킷과 스커트, 화장과 액세서리를 거침없이 소화하고 성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처럼 긴 역사성을 갖고 발전한 젠더리스룩이 요즘 더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이후 마켓에서는 ‘성을 초월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 바람이 역동적이다. 패션기업과 소비자들은 생물학적 성으로 구분해 상품을 기획하고 소비하는 진부함을 버리고 자유로운 자신감으로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젠더리스룩 유행의 긍정적 영향으로는 성별에 따른 왜곡된 태도와 편견이 줄어들고, 패션의 경계를 허물어감으로써 더 큰 세계를 향한 새로운 패션 발전의 창조적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2018년 S/S 시즌에 디자이너들은 이전보다 폭 넓은 스타일 구현과 훨씬 섬세하고 디테일에 신경을 쓴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구찌나 톰 브라운의 패션쇼, 푸시버튼 박승건, 준지의 컬렉션이 선보인 의상의 공통점은 1960~70년대 복고풍을 바탕으로 오버사이즈의 여유로움, 여성아이템이라 해도 믿을 만한 컬러 믹스와 디테일의 다채로움, 발랄한 프린트 셔츠, 얼굴을 전부 가려버릴 선글라스나 오버액세서리, 무엇보다 여성 고객이 입을 작은 옷도 출시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좀 더 실용적인 젠더리스룩을 찾고 싶다면 세트업슈트(set-up suit, 일명 조합 슈트로 재킷과 슬랙스를 다른 소재로 만들어 슈트로 함께 입기도 하고 재킷과 다양한 슬랙스로 여러 감각으로 연출해 입는 것)나 오버사이즈 맨투맨, 카디건, 블라우스 같은 셔츠로 과하지 않은 멋을 연출할 수도 있다. 성을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매료시킨 여배우 틸다 스윈튼의 패션은 카멜레온 같은 여성 젠더리스룩의 극치를 보여준다.

요즘 젠더리스룩을 보면 ‘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Fashion fades, only style remains the same)는 샤넬의 말처럼 시간을 초월해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를 만드는 장에 서있는 듯하다. 어쩌면 젠더리스룩은 단순한 멋내기와 옷입기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열린 자세의 표현, 편견의 벽을 넘는 독립적 유전자의 미닝 아웃(Meaning out)은 아닐까 생각된다. 영남대 의류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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