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케이크 메이커·오목소녀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5-25   |  발행일 2018-05-25 제42면   |  수정 2018-05-25
하나 그리고 둘

케이크 메이커
케이크 한 조각의 달콤한 위로


20180525

베를린에서 ‘크레덴츠’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파티셰 ‘토마스’(팀 칼코프)는 예루살렘에서 자주 출장을 오는 ‘오렌’(로이 밀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오렌은 가정이 있지만 토마스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두 도시를 오간다. 어느 날 오렌이 자동차 사고로 죽자 토마스는 그의 흔적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곳에는 오렌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가 경영하는 카페 ‘파몬’이 있다. 토마스는 파몬에서 일하며 아나트를 비롯한 오렌의 가족들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한 남자와 애인, 그리고 아내…혼란과 죄책감
사랑·자유향한 초콜릿케이크의 신비로운 힘



‘케이크 메이커’(감독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의 인물들은 제목에서 암시하는 바대로 케이크와 쿠키 등을 매개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첫 신에서 오렌은 토마스에게 케이크를 주문하고, 아나트의 집으로 초대를 받은 토마스는 그녀에게 같은 케이크를 선물한다. 오렌은 케이크를 먹은 후 자연스럽게 토마스와 연인이 되고, 아나트 또한 선물 받은 케이크를 깨끗이 핥아 먹으며 그를 향한 욕망을 표현한다. 카메라는 케이크의 예쁜 이미지뿐 아니라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까지 살려내면서 등장인물과 관객들을 동시에 유혹한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초콜렛’(2000)에서 주인공 비안느가 만드는 초콜릿처럼 토마스의 케이크에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아나트가 밀가루 반죽을 하는 토마스의 뒷목을 쓰다듬는 신의 긴장감은 영화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케이크가 등장하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초콜렛 케이크의 이름이 ‘블랙 포레스트’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독일어로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즉 독일 남서부에 있는 검은 숲과 같은데, 거대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멀리서 보면 검은색을 띤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이 숲에는 한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가문비나무를 비롯해 청정한 공기와 투명한 호수까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고 있다. 겉으로 불온해 보이지만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자 하는 오렌과 토마스, 아나트의 순수함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오렌은 토마스를 향한 사랑을 지키고자 했고, 토마스는 카페도 뒤로한 채 연인을 애도하며, 아나트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옭아맨 유대인의 규율을 거부한다.

각 인물들이 겪는 혼란, 즉 가정과 새로운 연인 사이에서의 갈등, 성적 정체성의 문제, 죄책감과의 싸움, 주변 시선에 대한 저항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영화는 노련하게도 이 모든 것들을 단정하게 묶어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세 인물의 행위가 공통적으로 과거로부터의 자유라는 목표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베를린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공간의 이동 속에 이러한 주제는 명확해진다.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의 조합처럼 인생의 여러 가지 맛이 들어있는 잔잔하고도 강렬한 수작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오목소녀
성공의 ‘단맛’ 실패의 ‘쓴맛’


20180525
20180525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여기던 ‘족구왕’(감독 우문기)이 독립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더니 ‘오목소녀’(감독 백승화)가 등장했다. 제작 규모면에서나 메시지의 중량면에서나 ‘족구왕’보다는 아담하게 느껴지지만 가벼운 코미디에 동시대 청년들의 암담한 상황을 담고 있다는 점, 성공의 단맛과 실패의 쓴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두 작품은 닮아 있다.


시합 지는 것에 공포·트라우마 가진 ‘바둑신동’
오목과 엮이며 성장…능청스러움·맛깔나는 대사



오목소녀 ‘이바둑’(박세완)은 바둑 신동이었지만 어느 날 시합 도중 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고 바둑을 그만둔다. 기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바둑은 어느 날 오목 대회를 홍보하러 온 ‘김안경’(안우연)을 알게 되고, 상금 50만원을 타기 위해 오목대회에 출전한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바둑이나 가수를 꿈꾸는 그녀의 룸메이트(장햇살)는 안정적인 거주 공간을 갖지 못한 인물들이다. 바둑은 사랑을 쟁취하고자 했던 ‘족구왕’의 만섭과 달리 생활고라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대회에 나가지만 족구나 오목이나 축구와 바둑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 프로 선수로서 돈과 명예를 얻기 어려운 종목이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던 바둑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한 걸음 성장한다는 드라마를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 안에서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작은 실패 후 괴짜 스승을 만나 훈련을 거듭하고, 마지막으로 한 수 위인 김안경과 시합을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는 인물들이 소개될 때부터 예측되는 바 그대로다. 그러나 평범한 캐릭터와 상황을 맛깔나는 대사들로 포장하고 특유의 유머로 툭툭 눙치며 빠르게 나아가는 스토리텔링이 유치하기보다 귀엽게 느껴진다. 그 시트콤 스타일의 코미디에 익숙해지고 나면 ‘이바둑’ ‘김안경’ 등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 같은 이름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워 토닥여주고 싶다. 박세완, 안우연, 이지원 등 스크린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능청스러움이 영화를 유연하게 끌어간다.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 말 자체는 그럴듯해도 혹 흙수저를 향한 입에 발린 위로는 아닐까. 삐딱한 질문이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걷기왕’(2016)을 만들었던 백승화 감독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굳이 진정성 여부를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자로 놓인 다섯 개의 돌처럼 걸림돌 없이 쭉 뻗어가는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응원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코미디,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57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