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악기를 만지지 않았다? 국악·그림으로 보는 옛 풍류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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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26   |  발행일 2018-05-26 제17면   |  수정 2018-05-26
조선 세태·풍경·인물 생동감 있게 다뤄
장마다 특정 음악·악기 등 자세히 소개
기존학설·상식 뒤집는‘설’도 종종 등장
선비는 악기를 만지지 않았다? 국악·그림으로 보는 옛 풍류
김홍도 작 ‘포의풍류도’. 그림에 다른 기물과 함께 악기인 당비파와 생황이 등장한다. 화제 내용은 ‘흙벽 집에 창을 내고 종신토록 포의(布衣)로 시와 노래를 즐기네’이다. <한울엠플러스 제공>
선비는 악기를 만지지 않았다? 국악·그림으로 보는 옛 풍류
국악, 그림에 스며들다//최준식·송혜나 지음/ 한울엠플러스/ 336쪽/ 2만9천500원

국악과 옛 그림을 소재로 한국의 전통 예술, 조선 후기의 세태와 풍류 등에 대해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책이다. 국악과 한국학을 전공한 두 저자는 어려운 전문 용어와 학계의 기존 시각을 과감히 배제하며 쉽고 알찬 내용으로 전통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를 유지하며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돕는다.

국악과 옛 그림을 각각의 소재로 다루는 책은 많지만, 이 둘을 같이 다루며 소개하는 책은 드물다. 옛 그림 속에 음악이 등장하는 경우, 그림이 묘사하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좀 더 정확히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림과 음악, 두 장르를 교차하며 읽는 ‘조선’은 그 세태나 풍경, 인물, 멋에 대해 더 풍요롭고 입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림과 음악은 모두 예술이란 장르에 속하지만 둘이 만날 수 있는 연결점은 별로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림은 시각 예술이고 음악은 청각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장르가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은 그림 속에 악기와 같은 음악 관련 기물이 나올 때다. 이 경우 우리는 악기를 매개로 그 그림을 한층 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림에 나온 악기가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기를 통해서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세태나 풍경도 읽어낼 수 있어 좋다. 물론 그 악기를 가지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좋다.”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말할 때 ‘전통’이 지칭하는 시대는 조선 후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전통’을 더 오래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의 말대로 이러한 감각 왜곡은 긴 우리나라의 역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전통’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막연함과 어려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막연함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음악과 그림의 생생한 공존이 ‘전통’에 관한 시간성을 선명한 형태로 바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리듬과 생동감은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이다. 국악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책인 만큼 장마다 특정 음악과 악기 등이 자세히 소개되면서 느끼게 되는 리듬감이 그것이다. 읽다 보면 당시의 풍류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체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명의 저자가 편안하게 묻고 답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형식이 생동감을 준다. ‘현학적 용어’와 ‘학계의 고질적인 시야’를 기피하는 두 전문가의 쉽고 촘촘한 대화는 궁금증이 유발되는 지점마다 적재적소에서 긁어주며, 때로는 궁금한 줄도 모르고 지나칠 만한 지점을 명확히 짚어주며 독자들의 머릿속 이해의 박자와 유연하게 발맞춘다.

“기존의 학설이나 상식을 뒤집는 설이 종종 나온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선비들의 악기 연주에 관한 것이다. 지금 국악계에 통념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선비들이 풍류방에서 거문고와 같은 악기를 연주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하도 많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국악방송 등에서도 마치 사실처럼 말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결코 악기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 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악기 연주란 주지하다시피 광대처럼 천민이나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비들은 악기 연주를 아주 멸시했다. 본문에서도 나오지만 선비가 악기 같은 것을 연주하면 완물상지(玩物喪志), 즉 ‘물건을 가지고 희롱하면 뜻을 잃어버린다’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선비들은 물건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악기를 가까이 하고 연주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국악과 옛 그림의 교류 시도가 주는 효과는 옛 풍류가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계 내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던 내용이 다른 학문의 관점에서 새롭게 교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흔치 않은 시도의 장점이다. 게다가 한국학 전공자와 국악 전공자, 가야금 연주자와 취미로 대금을 부는 국악 애호가인 저자들이 장마다 다채로운 시각으로 그림과 음악, 역사와 예술을 잇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이기에 새롭고 즐겁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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