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잊지못할 할머니의 어록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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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4 07:59  |  수정 2018-06-04 09:27  |  발행일 2018-06-04 제18면
“자존감 높여준 할머니 말씀…세상에 감사할 일 많아져”
20180604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지금의 대구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근처 낙동강을 건너 할머니가 혼인을 한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고 한다. 성주 소학리에서 시집을 왔다고 해서, 할머니는 평생을 ‘소학띠기’라고 불렸다. 그사이 소학띠기는 아들 다섯, 딸 넷을 낳아 기르다 보니 훌쩍 20년 세월이 가버렸고, 출산과 육아의 반복으로 다른 아낙네들이 하는 논·밭일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뱃사공을 불러 강을 건너야 장에 갈 수 있는 마을에 살아 장을 보는 일도 언제나 남편이 대신 했기에 동네 아낙네들은 “소학띠기 팔자만 같아라”라는 말로 부러움과 질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는 동네의 다른 아낙들이 어떤 의도로 ‘소학띠기 팔자’를 말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할머니에겐 다른 시골 아낙에게는 없는 높은 자존감이 있었다. 사실 할머니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기에 평생 글자 하나를 모르고 사셨다. 그렇기에 이 높은 자존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나는 늘 궁금했다.


자존감 높았던 할머니의 결혼조언
“사랑받는 여자는 ‘때깔’이 다르다”
가족을 이루니 사랑‘하는’ 사람 돼
딸아이에게도 할머니 어록 전할 것



자존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할머니에게서는 배울 게 참 많았다. 다만 그 대상이 집안일이나 농사일은 아니라는 게 좀 남달랐다. 내가 서른을 훌쩍 넘겨 사람들이 말하는 노처녀가 되어 있을 때쯤 할머니는 이미 팔순을 넘겨 거동이 어려우셨고, 큰아들 부부가 참외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번기에는 요양병원 신세를 지셨다. 그즈음 나는 의미 없는 맞선과 소개팅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고, 대구엔 멀쩡한 남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걸로 결론을 지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요양병원 그 좁은 침대에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지난주에 맞선 본 이상한 남자의 행태에 대해 성토하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가 알아듣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요양병원에선 늘 시간이 더디 흐르기 때문에 이런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그 지루함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한참의 성토 후에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받는 여자는 때깔이 다른 기라. 니도 때깔이 달라지믄 가가 니 짝이다.” 때깔이라…. 전형적인 경상도 말에 해당하는 이 단어를 해석하면 누군가의 진정한 사랑을 받는 여자는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아름다워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렇게 아름다워졌다고 느낄 때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것이 할머니의 조언이었다.

그 어떤 연애상담보다도 간결하고 명쾌했으며 무엇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신랑감의 직업이나 연봉, 키, 몸무게 등의 각종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내 결혼의 기준을 이 ‘때깔’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할머니의 드높은 자존감의 근원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할머니는 “때깔”이 다른 게 뭔지 경험해 봤고, 또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은 여자’라는 그 자존감이 우리 할머니에게는 있었고,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이 자존감은 빛을 발했다.

그사이 시간이 흘러 기어이 30대 중반을 넘기고, 내가 집안의 골칫거리로 등극했던 그즈음 할머니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집안 여식들 중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여자는 없다. 걱정할 거 없다. 더 좋은 이가 나올 기라. 급하다고 암꺼나 먹으면 체하기밖에 더하나.” 맞다. 그렇다. 결혼에 쫓겨 아무나하고 결혼하기에는 내가 너무 소중했고, 더군다나 할머니가 보증해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 집안 여식으로 태어나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없었노라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할머니의 이 보증이 정말 좋았고, 어쩌면 난 예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 후 80대 중반을 훌쩍 넘긴 할머니는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고, 나는 30대의 끝자락에 결혼해 할머니가 말씀하신 “때깔이 다른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야 할머니가 내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받는 여자에 대해서는 말씀해 주셨지만, 결혼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또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해서는 말씀해 주시지 않은 것이다.

어느 토요일, 가족 모두가 늦잠을 늘어지게 자던 날이었다. 내가 누운 왼쪽으로는 15개월 딸아이가 곤히 자고 오른쪽에는 남편이 자고 있었다. 혼자 눈떠 왼쪽 오른쪽 번갈아 보다 알게 된 것이 있다. 이제는 사랑받는 여자에서 사랑하는 여자가 되었고, 사랑하는 여자는 세상에 감사할 일이 아주 많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늦잠을 즐기는 이 아침이 감사하고, 가족이 아프지 않은 것도 감사했다. 별다른 일이 없는 지루하기까지 한 이 평화로움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임을 어느 토요일에 깨닫게 된 것이다.

먼 훗날 딸아이에게 나는 할머니의 어록들과 함께 “사랑하는 여자는 세상에 고마운 것들이 참 많아진다. 그래서 더 겸손해지고 더더 착하게 살고 싶어진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혜정 (대구 경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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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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