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한 번 더 깨져도 괜찮다’는 사람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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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4   |  발행일 2018-06-04 제30면   |  수정 2018-06-04
6·13선거 열흘앞 한국당
역대 최악의 주변환경에
최약체인 내부 인적구성
지금 만연한 패배주의는
나라발전에도 도움 안돼
[송국건정치칼럼] ‘한 번 더 깨져도 괜찮다’는 사람들

필자는 1989년 노태우 총재(대통령)가 이끄는 민주정의당부터 자유한국당 계열을 쭉 취재해 왔다. 우리 정치에서 보수세력의 맥을 잇는 한국당은 지금 밑바닥에서 2년 가까이 헤매고 있다. 주변 환경은 역대 최악이고, 내부 인적 구성은 역대 최약체다. 불행의 시작은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었다. 정확하겐 몰락을 불러온 정치적 도덕성과 경쟁력 상실, 내부 통제와 견제 시스템의 붕괴였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감옥에 갇힌 후에도 보수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마침내 전임 보수정권을 이끌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신세가 됐다. 이 과정은 정권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에겐 지독한 고통이었고, 보수성향 국민에겐 자괴감을 안겼다. 자연스럽게 보수층은 ‘정치’를 멀리하게 됐다. 여론조사기관들은 대통령 국정운영이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자신의 이념성향을 ‘보수’라고 전제하는 응답자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응답자의 성향이 ‘진보’에 쏠렸다며 가짜 여론조사라고 자주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 유권자가 성향을 밝히기 꺼려하거나, 정치에 무관심해졌거나, 중도·진보로 마음을 바꾼 것 역시 여론이고 민심이다. 이런 현상은 ‘촛불민심’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정부를 떠받치는 여러 환경 가운데 하나가 돼 있다. 다른 한 편에선 조기 대선 1년 이후까지 자신을 ‘진보’라고 자신 있게 밝히며 국정현안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만든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한반도 평화무드를 조성하고 문 대통령이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진보정권은 날개를 달았다. 각종 경제지표나 체감경기에서 지난 1년 동안 나라 살림이 더 어려워졌음이 읽히지만 이를 크게 따질 분위기도 아니고, 그럴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는 사이에 6·13 지방선거가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전국 곳곳에서 한국당 후보들의 비명과 한숨 소리가 들린다. 민주당의 사실상 싹쓸이는 현실이 되고 있다. 민주당 후보들은 여러 곳에서 몸조심에 들어갔다. 좀체 이슈를 만들지 않는다. 추격하는 입장에선 한반도 비핵화가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있는데다, 지역별로도 이슈 파이팅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최악의 주변 환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도보수 정치세력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갈라져 선거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적지않은 지역에서 표가 분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지어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에선 민주당 후보(박원순)의 승리를 당연시하면서 한국당 후보(김문수)와 바른미래당 후보(안철수)의 2위 싸움이 더 관심을 모으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다.

사실, 이런 주변환경들은 시간이 지나거나 상대방의 실수, 실책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반면에 내부의 문제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쌓이다가 나중엔 수습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한국당 안에서 얘기되는 ‘홍준표 패싱론’. 홍 대표의 과격한 언행 때문에 후보들이 지원유세를 받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런 리스크를 가졌다고 판단했으면 선거 한참 전에 정리했어야지 전쟁이 치열한데 장수 탓만 하고 있다. 더 큰 내부의 적은 한국당에 퍼진 패배주의다. 당내에서 “망가진 김에 이번에 한 번 더 참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남 일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대안은 없다. 이 상태면 2년 후의 총선, 4년 후의 대선 때까지도 패배주의에 젖을 수 있다. 보수가 한 쪽 날갯짓을 못해서 결국 진보의 날갯짓만으로 날게 하는 건 새를 추락시켜 역사에 죄를 짓게 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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