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고택과 정자의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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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4   |  발행일 2018-06-04 제30면   |  수정 2018-06-04
韓美 대 북한 구도 아니라
南北 대 美 구도로 보일 때
남북 평화통일은 고사하고
당장 비핵화문제 난관 우려
주변국의 협조가 절대 필요
[아침을 열며] 고택과 정자의 정치철학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한국의 고택은 참 많다. 충남 예산군에는 추사 김정희의 고택이 있고, 논산의 명제 고택은 한국고택의 교과서라 할 만큼 유명하다. 경산에는 난포고택이 있고, 안동에는 학봉 김성일의 고택이 있으며 또한 광산김씨의 고택도 있다. 손님이 고택의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의 마당이 펼쳐지고, 이어 그 중심의 안채마당으로 통하게 된다. 주인의 신분을 대변하는 대문은 기(氣)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쪽으로만 여닫는다. 우리의 고택들은 생활을 위한 사람의 내부공간이지만 결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고택에 딸려있는 정자도 사람의 생활공간과 자연공간을 다 함께 공유한다. 특히 정자는 어느 곳이든 대체로 하나의 철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안동의 와룡면 오천1리 군자마을에 있는 광산김씨의 정자인 산남정도 그렇다. 우주 만물은 ‘하나에서부터 셋이 됨이니 셋을 모아 하나에 이르니라’는 천부경의 원방각원리에 따라 천지인을 형상화하여 정자를 지었다. 성주에 있는 세종대왕자들의 태실에서조차 이 원리를 따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자의 바깥쪽으로는 양을 의미하는 9개의 원기둥(圓)을 세워 원형의 우주(天)를 상징케 하고, 안쪽으로는 음을 의미하는 6개의 4각기둥(方)을 세워 동서남북의 대지(地)를 상징케 했다. 그리고 그 천지의 하늘과 땅의 중간 공간에서 사람(人)은 자신이 각(角)으로 살아감을 상징케 했다. 이 각(角)이 동물에게는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를 해치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서 뿔을 의미하나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알도록 한다는 의미의 깨달을 각이다. ‘뿔 각(角)’이란 곧 ‘깨달을 각(覺)’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깨어있지 않으면 뿔에 치여 그 삶이 곧장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이것이 어찌 사람에게만 해당하겠는가. 나라 전체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고, 전 세계를 요동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위정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다. 북한의 비핵화문제와 북미관계정상화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낙관하는 분위기가 많지만, 궁극적으로 집권여당의 폭넓은 자각 없이는 또 다른 낭패의 결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광복 후 70여 년 동안 우리는 굶주려가면서도 산업화를 했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민주화를 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뒤에는 5천만명의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이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뒤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 우리는 국민여론이 대한민국을 이끄나 북한은 인민혁명이 공화국을 이끈다. 공화국에는 인민만이 있고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산다면, 공화국에서는 인민의 생존은 있어도 ‘사람’의 삶은 없다. 공화국이 바로 인민 전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산다면 그들은 혁명의 일꾼으로 산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절실했고 그들에게는 통제가 절실했다. 그래서 남북한은 서로의 국격이 달라졌고 품격이 달라졌다.

이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북쪽의 저녁전화 한 통을 받고 국방부의 절차도 없이 반갑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대통령은 적어도 사랑채의 바깥 인사들과도 진지한 소통을 하고 안채의 사람들까지 보듬어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행동반경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지지율이 높다고 과반의 보수를 내팽개친 채 자유대한 앞에서 공화국의 위원장을 찬양만하고 나선다면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렸던 우리 자신과 우방들은 우리의 국격을 어떻게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미국은 이미 우리 대통령의 남북한 중재역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한미 대 북한의 구도가 아니라 남북 대 미의 구도로만 보여질 때 남북한의 평화통일은 고사하고 당장의 비핵화문제에 부닥칠 것이다. 평화통일도 요원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지금 당사국들과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먼저 국내의 보수·진보를 가리지 말고 우리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동시에 북측과의 협상을 밖의 우방세력과 공조해야 한다.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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