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나무의사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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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7   |  발행일 2018-06-07 제31면   |  수정 2018-06-07

영화 ‘아바타’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영혼의 나무도 그중 하나다. 영혼의 나무가 뿌리와 가지로 판도라 행성의 모든 정령의 기운과 뜻을 모으고 생명을 구원한다는 설정은 공상이지만 곰곰이 씹어 보면 현실적이고 타당하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식량을 공급한다. 식물 자체는 물론 동물이나 곰팡이조차도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한다. 이산화탄소와 물만 가지고 햇빛을 이용하여 식량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신의 영역에 두어도 부족함이 없지 않겠나 싶다.

식물계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나무의 놀라운 능력은 광합성뿐이 아니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같은 모양의 세포를 만들어내는 형성층, 해마다 새로운 눈(芽)을 내는 정단분열조직, 무한정으로 뻗어나가는 뿌리…. 역할을 다한 가지나 잎을 스스로 잘라내는 기능 역시 경이롭다. 나무는 이런 능력으로 수천 년을 산다.

셸 실버스타인은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 웅변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나무에게 해주는 게 없다. 해주기는커녕 함부로 꺾고 베고 못살게만 군다. 뜻대로 나무를 심고 옮기고 모양을 낸다.

오는 28일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나무의사 제도가 시행된다. 그동안 수목보호기술자나 식물보호기사 등이 병든 나무를 진료해왔으나 이날부터 나무의사만 나무를 치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동안 아파트 정원수나 공원수, 거리의 가로수 등의 병해충 방제를 아파트 관리인이나 소독업체 관계자 등 비전문가가 해왔다. 산림청이 2015년 전국 아파트 단지와 학교 36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권 수목관리 실태조사에 의하면 병해충 방제의 92%가 비전문가에 의해 행해졌으며 사용된 농약의 69%는 부적절한 처방이었다.

사실 우리가 나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굳이 나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무위(無爲), 나무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정도일 게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체인 나무를 물건 다루듯 하는 현실에서 무위는 곧 무책임이다. 인공의 개입으로 나무가 더 아프고 더 많은 벌레에 시달리는 사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는 게 도리다. 나무의사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그 역할을 다하길 기대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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