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의 철학편지] “시민·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는 이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니”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6-08   |  발행일 2018-06-08 제39면   |  수정 2019-03-20
20180608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불린다. 선거철만 되면 이 말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태형아, 과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일까? 우리를 대의하고 대표한다는 그 누군가를 잘 선택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꽃피게 되는 것일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오늘은 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한 우리의 정치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해.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78)는 1762년의 ‘사회계약론’에서 “대표라는 개념은 근세에 와서 생긴 것”이라고 하면서 “고대의 공화국, 아니 군주국에서조차 인민은 결코 대표자를 가지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어. 우리가 민주주의 발상지라고 생각하는 그리스에서도 대표자의 선출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인민이 해야 할 모든 일은 인민 자신에 의해 행해졌고, 인민은 끊임없이 광장에 모여서 정치를 논의했다는 것이지. 물론 이때의 인민이나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정치(폴리티콘)는 여성·노예·야만인을 제외한 자유인의 조직인 ‘폴리스’에만 적용되는 것이었어.

일정 연령이 되면 누구나 동일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가 정착된 것은 프랑스혁명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혁명을 지나고, 그러고 나서도 많은 이의 희생이 있고 난 후라는 걸 너도 알 거야. 21세 이상 백인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던 미국은 1870년이 되어서야 흑인 남성도 투표할 수 있었어. 여성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20년에야 투표권을 얻게 되지. 돈과 여가를 가진 지주층에만 부여됐던 영국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1832년이 되어서야 다수의 중산층에 허락되었고 여성은 1928년에야 보통선거권을 얻게 되지.

그런데 이 대의제라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정치에 합당한 것인가라는 문제 제기가 늘 있어왔단다. 어떻게 대표자 몇 명이 전체의 의견을 대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앞서 우리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대해 한 학자는 “제비뽑기와 교대책임제야말로 아테네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이었다”고 말해. 그리고 중세의 피렌체나 베네치아도 주요 공직자를 뽑는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이용했다고 해. 좀 놀랍지? 제비뽑기가 민주주의적이라니 말이야. 그런데 근대의 루소도 앞서의 사회계약론에서 “통치자 및 행정관의 선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선거와 추첨”이라고 강조했어. 또한 몽테스키외는 “추첨에 의한 선거는 민주정의 본질에 적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이다.

재미있지 않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치켜올리고 있는데 추첨제, 그리고 제비뽑기라니? 민주주의와 정치를 희화화하려는 수작이 아니냐고 성질을 낼 만도 하겠지. 그런데 루소는 결정타를 한 방 날려. “영국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한참 잘못 생각하는 거다. 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단지 의회 구성원을 뽑는 선거 기간뿐. 일단 의원들이 선출되는 즉시 영국 국민은 노예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늘 새겨야 할 말일 거야.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 그는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해 “국민은 공공영역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정부의 임무는 오직 자신의 고매한 기질을 행사하는 소수의 특권이 되었다”고 비판해. 아렌트는 미국 혁명기의 제퍼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빗대 ‘선거에 의한 전제정’이라는 표현을 썼단다.

물론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이 이렇게 비판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아.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의 경우도 있지.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근소하게 이기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 그는 ‘경제 발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김대중에게 쏠리던 절반의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엄포성 발언’을 했다고 해. “이게 민주주의? 가장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유권자를 만들어 놓기 시합하는 것이 민주주의란 말인가. 이제 그 따위 놈의 선거는 없어!”

정말로 그는 유신헌법을 통해 ‘그 따위 놈의 선거’를 없애버렸단다.

태형아, 나는 지금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서 선거제도가 틀렸다거나 무용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야.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선거가 민주주의 정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 우리의 대표를 잘 뽑는 것은 그 제도가 가진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이 없어. 우리가 뽑은 그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좋은 정치를 구현해 낼 수 있을 거야. 다만 정치는 선거 그 이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 지금이 귀족정이나 과두정이 아닌 민주정의 시대라면 시민과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들은 결코 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니?

구해놓고 읽지 못한 ‘추첨시민의회’(삶창, 2017)라는 책을 읽어봐야겠다. 너도 한번 읽어보고 같이 토론해 보자꾸나. 시인·의사

20180608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