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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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2 08:18  |  수정 2018-06-12 08:18  |  발행일 2018-06-12 제24면
[문화산책]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
손혜영 <한국무용가>

고3 여자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담을 하러 왔다. 평소 춤에 관심이 아주 많은데 많은 상호 중에 특히 간판 색이 마음에 들어서 이곳에 왔단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저는 춤을 좋아해요. 특히 방송댄스를 제일 좋아하고 학교 행사 때 안무도 하고 교실에서 늘 연습을 했었어요.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춤으로 대학 진학을 하고 싶어 왔어요”라고 했다. “그래, 잘 왔다. 그런데 여기는 전통춤을 연구하는 곳이고 나는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사람이야.” “네, 알아요. 그래서 왔어요. 저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두 번째로 두고 싶어요. 가장 좋아하는 것을 처음으로 두면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아서요.”

그 아이의 말이 가슴을 쳤다. 그렇다. 내 삶에서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도,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도 첫 번째였다. 항상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하고 아프게 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점에서 볼 수 있듯이 아마추어는 즐기는 자들이고 프로는 점점 고통 속으로 들어가며 결코 즐기지 못한다. 프로는 이루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야 하고 양육해야 하며 보존, 계승, 발전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즐거움을 잃어버린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의 전공을 자녀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한다. 즐거움보다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 고3 여자아이가 벌써 이 삶의 원칙을 안다고? 매력 넘치는 그 아이를 보며 “너 참 훌륭한 녀석이구나”라고 말하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고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해 춤의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뛰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 춤이 내 삶에 두 번째일까? 그래서 이렇게 길게 하고 있나? 어느덧 내 삶이 되어 버려 이젠 버리지도 되돌아가지도 못하니 어쩔 수 없이 1번의 자리에서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의 말에 동감하면서 그 아이의 생각에 끌려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 아이로 인해 난 어떤 것이 진짜 삶인지 순간 방황했다. 좋아하는 것을 두 번째로 두고 조금 덜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 일어나 보겠다? 어쩜 그 아이의 생각이 옳은지도 모른다. 최고가 행복할 것 같지만 어쩜 두 번째로 사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난 누군가에겐 첫 번째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버거울 수 있지만 그것이 가장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부담 없이 편하게 사는 게 행복한 것일까.

또렷하게 자기표현을 하며 자기 삶에 신중한 그 아이가 훗날 멋진 춤꾼이 되어있길 바라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파이팅을 날려본다.손혜영 <한국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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