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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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5   |  발행일 2018-06-15 제42면   |  수정 2018-06-15
하나 그리고 둘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쓰나미에도 살아남은 피아노 소리…경건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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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촬영을 시작해 5년간 ‘류이치 사카모토’를 따라다니며 그의 삶을 면면히 들여다본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감독 스티븐 쉬블)는 미야기현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한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쓰나미에도 살아남은 피아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방문해 피아노를 만져보는 중이다. ‘익사한 피아노 송장을 연주하는 기분이었다’는 인터뷰와 함께 그는 원전 사고 지역으로 향한다. 달력이 2011년 3월11일에서 멈춰 있는 그곳에서 그는 쓰나미가 몰려왔던 바다 방향을 바라본다. 그리고 재해 당시 대피소로 사용되었던 중학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한다. 세계적인 뮤지션이자 사회활동가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을 조명한 이 작품에 더없이 적절한 오프닝이다.


음악·연기자·미디어 아트…전방위 아티스트
친환경·평화로운 세상 추구하는 삶 집중 조명



대중에게는 ‘전장의 크리스마스’(감독 오시마 나기사) ‘마지막 황제’(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화음악감독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솔로 앨범과 밴드 활동(YMO) 등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뮤지션이었다. 데뷔 후 40년 동안 장르의 한계 없이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온 그는 1990년대 이후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음악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전위적 창작 오페라, ‘라이프(LIFE)’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영화는 음악뿐 아니라 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미디어 아트로까지 영역을 넓힌 전방위 아티스트로서의 류이치 사카모토와 친환경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이 맞닿는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것은 원전 사고 이후 그가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해온 시점부터 촬영된 이 다큐의 최초 기획이기도 하다. 영화 자체는 정치색을 거의 띠지 않으면서 한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령 스티븐 쉬블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시위에 나서거나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많이 넣지 않는 대신 그가 피아노나 컴퓨터 앞에 있는 모습, 그리고 일상과 자연의 다양한 소리에 탐닉하는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쓰나미에 망가진 피아노 소리,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 아프리카 호숫가의 소리 등으로 새로운 앨범(async)의 음악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영화에 종종 삽입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상들만큼 신비롭고 바흐의 코랄 전주곡처럼 경건하게 다가온다.

2014년 인후암 진단을 받은 후 잠시 치료에 집중하기도 했으나 그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영화음악과 새 앨범 작업에 몰두해왔다. 원하던 소리를 찾아낼 때마다 어린아이같이 천진한 표정을 짓는 1952년생 류이치 사카모토에게는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를 악보에 쏟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인다. 세상을 오염시켜온 각종 폭력과 인재(人災)들은 그의 창작욕에 끼얹어진 기름과도 같다. 인터뷰이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영상에 얹히는 그의 목소리는 연출자의 태도를 대변하듯 다정하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예술철학과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촬영·구성·편집 등 모든 면에 있어 완성도가 높은 다큐멘터리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01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여든여덟·서른세 살 예술가의 유쾌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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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감독 아녜스 바르다, 제이알)은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제이알’이 만나 떠난 유쾌한 여행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카메라와 대형 프린터가 장착된 포토트럭을 타고 프랑스 곳곳을 누비며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하고 곧바로 동네에 전시한다. 소도시 시골 마을이 그곳 주민들의 거대한 얼굴로 도배돼 멋진 갤러리로 변하는 모습은 매 장면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올라오게 만든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는 두 사람의 밝은 성격과 영화에 가득한 장난기를 대변한다. 예술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즉흥적인 모험’이라는 바르다의 표현이 어울릴 법한 출발이건만 그들은 낯선 사람들과 장소로부터 항상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렇게 개별 여행에서 만들어낸 사진의 콜라주들은 다시 94분짜리 영상의 일부를 이룬다. 말하자면 이 다큐는 ‘박제된 시간으로 완성시킨 영상의 콜라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소도시 누비며 얼굴촬영 마을에 전시
낯선 사람들과의 이야깃거리 작품으로 승화



농부·광부·공장 직원들의 얼굴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고, 여성들의 감춰진 용기와 아름다움, 직업의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인 면도 있으며, 관심이 동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자연친화적인 부분도 있다. 또한 애들처럼 티격태격하는 바르다와 제이알의 모습이 버디무비의 즐거움을 주는 한편 기 부르댕,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장 뤽 고다르 등 작가에 대한 헌사가 있는 부분에서는 지극히 지적이기도 하다. 애들부터 노인까지, 농촌부터 항만까지, 물고기에서 염소까지 이들의 소재에 제한이 없는 만큼 영화의 매력도 끝이 없다.

친구나 파트너가 되는 데 나이차가 장애가 될 수 있을까. 벤치에 앉아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앞뒤로 흔드는 바르다는 천생 아이 같고, 타인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아는 제이알은 세상을 오래 살아본 어르신 같다. 여든여덟 살 바르다의 흐릿한 눈과 재치, 서른세 살 제이알의 (선글라스에) 감춰진 눈과 지혜가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프로젝트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9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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