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쉼표, 이야기 따라 포항여행] ④ 포항 중명자연생태공원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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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19   |  발행일 2018-06-19 제13면   |  수정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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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다람쥐·오리…숲 구석구석 동물조형물 찾는 재미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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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연일읍 중명리 중명자연생태공원 내 생태탐방로의 모습.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 생태탐방로 주변으로 숲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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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관목을 하트모양으로 가지치기해 놓은 하트원은 중명자연생태공원의 인기 포토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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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자연생태공원 초입에 자리한 해시계 광장. 광장 주변으로 솟대와 돌탑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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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자연생태공원 내부의 숲 구석구석에는 반달곰과 학 등 각종 동물 조형물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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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자연생태공원 전망대에서는 포항도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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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과 세오녀가 이 땅을 떠났을 때 세계는 빛을 잃었다. 세오녀의 비단옷을 가져다 극진한 제사를 올리자, 해와 달은 다시 떠올랐다. 그 빛나는 광명의 한가운데를 중명(中明)이라 했다. 형산강 남쪽, 포항 연일의 옥녀봉과 소형산을 잇는 마루금 사이 작은 땅이 바로 그곳이다. 지질시대 말기 인류가 출현했을 적부터 고대인이 살았다는 중명리 한가운데에 그리 깊지도, 그다지 넓지도, 아주 길지도 않은 골짜기가 있다. 지금 그곳은 태고의 자연에 인간의 반드러운 손길이 더해진 중명자연생태공원이다.

어느길에나 싱그러운 樹木 사방 가득
군데군데 광장·공원·정원이 자리
관목 가지치기한 하트원은 인기 포토존
야생원에는 계절따라 야생화 꽃 피워

옥녀봉 능선 향하는 등산로 계단 오르면
짧은 수고 격려하는 듯 해맞이전망대
더 걸으면 UFO 닮은 생태공원전망탑 자리
영일만·포스코·호미곶까지 한눈에 감상


#1.중명자연생태공원

중명자연생태공원의 초입은 포항시 남구 연일읍 중명2리 원리(院里)다. 고려 말 서원이 있었던 마을이라 원골, 원동이라 불려왔다. 길가에 400년 된 회화나무 7그루가 마을을 수호하며 늘어서있다. 웅장한 전주곡 같기도 하고, 사람과 자연의 동존에 대한 엄중한 절도(節度)를 가르치는 듯도 하다. 마을 표석 옆에 ‘중명자연생태공원 1.5㎞’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은행나무길이 이어지고, 곧 주차장과 몇몇 카페와 안내소와 화장실을 차례로 지난다.

시작은 해시계 광장이다. 솟대와 돌탑이 세계의 안녕을 빌며 서있다. 광장 앞 계류에 동동 놓인 징검다리 너머 육각 정자가 앉아 있다. 정자 뒤편으로 성급히 산을 치고 오르는 오솔길이 나 있다. 공원 안내판을 보며 골짜기의 개략을 읽는다. 작은 공원과 작은 정원을 잇는 생태 탐방로가 1.1㎞, 그 가운데 등산로가 두엇이다. 탐방로는 계곡과 나란히 나아간다. 자연 그대로의 계곡도 있고, 물길을 넓힌 곳도 있고, 석축을 쌓아 다듬은 곳도 있다. 곳곳에 사방댐을 설치해 두었는데, 상류에서 내려오는 토석을 차단하고 물의 속도를 줄여 산사태나 홍수를 예방하도록 했다. 탐방로는 또한 천천히 상승한다. 제법 널찍한 콘크리트길도 있고 걸음 소리 경쾌한 데크로드도 있다.

어느 길에서나 넘치는 빛에 젖어 싱그럽게 살 오른 수목들이 사방을 에워싼다. 길섶에는 느티나무·팽나무·상수리나무·화살나무·박태기나무·꽝꽝나무·미선나무·갈참나무·오리나무·산뽕나무·꽃댕강나무 등 익숙한 이름, 생소한 이름, 재미있는 이름들이 가득하다. 물가의 능수버들은 왜 언제나 시리도록 아름다울까. 나무들은 모두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타고난 긍지를 온몸으로 내보이고, 사람들은 무방비상태로 기꺼이 그들을 닮아간다.

군데군데 광장과 공원과 정원들이 탐방로의 잎사귀처럼 매달려 있다. 잔디광장에는 작은 무대가 있고 나뭇잎 날개를 단 물고기 스틸아트가 가운데 자리한다. 조그마한 연못과 좁장한 물길이 있는 곳은 수변공원이다. 연못에는 물고기 잡는 아이들 조형물이 이제 달리기 시작한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연접한 수변광장에는 구슬모양의 스틸아트가 점점이 놓여 있다. 신들이 구슬놀이하다 두고 간 듯한 그것은 볼록거울이 되었다가 의자가 되기도 한다. 야외 학습장이 있는 숲속 교실은 활짝 열린 공부방이다.

키 작은 관목을 하트모양으로 가지치기해 놓은 하트원은 인기 있는 포토존이다. 야생화원에는 두메부추·배초향·나무꽃향유 등 다양한 야생화가 계절 따라 화사하게 피어나고, 약용원에는 둥굴래·삼백초·구릿대·인동·하수오·도라지 등 약용식물이 가득하다. 이 외에도 향기원, 습지원, 암석원 등이 테마별로 조성되어 있다. 다양한 식물군을 학습할 수 있는 풍성한 자료는 매력적이다. 그래선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의 단체 탐방이 많다. 숲 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자연은 호사다. 인간의 손길이 더해진 자연은 남녀노소에게 관대하고, 그래서 다가서는 걸음은 좀 더 가볍다.

#2.만나고, 찾고, 맞추고

중명자연생태공원에서는 특히 아이들의 눈높이를 신경 쓴 마음이 곳곳에 보인다. 아이들은 이 자연 속에서 아기돼지 삼형제와 늑대를 만나고,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유혹하는 얼룩말·기린·사자와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만나고, 올챙이와 개구리·나비도 쉽게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확대해 들려주는 소리채집기도 있다. 가만 귀를 대면 들린다. 계곡물 소리, 이파리를 스치는 바람소리. 새들이 깃든 나무의 우듬지가 가볍게

떨리는 소리, 살아 있는 작은 생명들이 바스락거리며 발을 옮기는 소리. 아이들의 작은 발이 가만

가만 구르는 소리도 들린다.

숲 구석구석에는 동물 조형물들이 숨겨져 있다. 높은 바위 위에 우뚝 선 산양, 나뭇가지 위에 작은 두 손으로 도토리를 꽉 쥐고 있는 다람쥐, 계곡에는 오리와 학, 수풀 속에서는 시커먼 멧돼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또 무엇이 있을까, 두리번두리번 찾게 된다. 소나무 숲 그늘에 호랑이, 물가의 수달 가족, 산 능선에 백호, 그리고 길 가에 턱 주저앉은 반달가슴곰. 달팽이도 있다는데 어디에 있을까. 조형물들은 때때로 위치가 바뀌는 듯하다. 그제 만난 수달을 내일은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

식물의 이름표 사이사이에는 ‘나의 이름은 뭘까요’라고 묻는 질문들이 있다. 물음판을 살짝 열어보면 식물의 이름과 특징, 꽃말까지 설명되어 있다. 단풍나무는 은둔, 느티나무는 운명, 이런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퀴즈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교육적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을 수선스럽고도 감탄스러운 자유로, 거리낄 것 없는 호기심으로 소유한다. 사실 환호하는 어른도 많다. 하긴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아이였다.

#3.해와 달의 전망대

생태 탐방로가 끝나면 옥녀봉 능선으로 오르는 등산로 계단이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되돌아 내려간다. 그러나 조금만 오르면 짧은 수고를 뿌듯하게 해주는 해맞이 전망대에 닿는다. 포항의 동해바다 일대를 모조리 가진 테라스다. 여기서 마루금의 폭신폭신한 흙길을 100m쯤 걸으면 하늘아래 360도로 열린 중명자연생태공원 전망탑이 있다. 높이 18m의 전망대는 얼핏 UFO를 닮았다. 지붕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어 밤이면 화려하게 빛난다. 생태타워는 2012년 ‘IPD 국제외교디자인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정식 이름은 ‘빛누리 에코타워’. ‘해와 달의 빛을 담아 세상을 비춘다’는 주제를 품고 있다.

전망대 1층에 옥녀봉의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옛날 산 아랫마을에 살던 옥녀라는 착하고 예쁜 소녀가 젊은 상인과 사랑에 빠지고, 돈 벌러 떠난 뒤 소식이 없는 정인을 기다리며 옥녀봉에서 형산강을 내려다보다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다.

전망대에 오르면 포항시내 일대가 모두 조망된다. 영일만과 포스코·호미곶까지 한눈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포항의 대표적인 명산인 운제산 자락이 잡힐 듯하다. 북쪽으로는 포항의 관문인 형산과 제산, 멀리는 비학산과 내연산까지 담을 수 있다. 형산강과 강변의 들이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 형산

강 하구는 빌딩 숲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강과 바다가 만난다는 것을 안다. 연오랑과 세오녀처럼 옥녀와 사내는 다른 세상에서 만났을 것이고, 내일도 빛 가운데에서 세상은 시작된다. 이제 돌아가야 할 저 도시의 치열한 밀집조차도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건강한 기쁨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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