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장선생님은 시인·가수·마라토너”

  • 글·사진=천윤자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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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0   |  발행일 2018-06-20 제14면   |  수정 2018-06-20
정기원 영천 포은초등학교장
2014년부터 낸 시집이 다섯권
행방불명 형 찾으려 TV 출연
전국노래자랑 장려상 받기도
한자·과학교육에도 정성쏟아
“우리 교장선생님은 시인·가수·마라토너”
정기원 영천 포은초등학교 교장이 각종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면서 받은 완주 메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 시인이며 가수이고 또 마라톤 선수예요.”

최근 시집 ‘빈 의자에 앉다’를 출간한 정기원 영천 포은초등학교장(57)을 아이들은 이렇게 자랑스러워한다. 2014년 첫 시집 ‘한낮의 풍경’을 낸 후 다섯째 시집을 냈으니 매년 한 권씩 출판한 다작 시인이다. ‘운동장에서 보내는 편지’ ‘무심코 손을 잡다’ ‘마라톤’ ‘빈 의자에 앉다’ 등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평생을 교직에 몸담아온 시인의 일상과 삶의 철학, 아이들을 향한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이 잘 나타나 있다. 해동문학을 통해 등단했던 그는 공무원문예대전, 신라문화제, 목월백일장 등에서 많은 수상을 했다.

‘해맑은 웃음들이/ 화장지 풀어놓듯 늘어선 트랙을 돌아/ 팔랑거리는 만국기에 걸터앉았다/ 횟가루 분진을 뿜어내고 달리는/ 운동화 뒤축에서/ 어머니의 눈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 / 오색풍선에 매달려/ 교정을 떠다니는 만세소리가/ 파란 가을하늘보다/ 더 정겨운 날이다’ <운동회>

정 교장은 또 마라톤 마니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각종 전국대회에 108회나 참가했다. 교장실 한쪽 벽면에는 참가한 대회의 메달이 훈장처럼 걸려 있고 탁상 달력에는 주말마다 참가했거나 참가할 대회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의 마라톤 입문 동기는 형을 찾기 위해서였다. 20대에 집을 떠난 두 살 위의 형 기봉씨가 행방불명된 이후 정 교장은 ‘형을 찾는다’는 내용의 띠를 두르고 전국 방방곡곡을 달렸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1천회 달성’ ‘4만2천㎞ 지구 한 바퀴 거리 뛰기’ 등과 같은 다른 목표가 생겼다.

그의 시집에는 ‘마라톤’이라는 연작시가 21편이나 실려 있다. ‘어떠한 형용사나/ 품사로 표현할 수 없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심적 긴장과 이완/ 완주라는 목적어뿐/ 더이상 대입할 단어가 없다/ 그렇게 달렸다/ 헐떡이는 가슴에 못이겨/ 주어를 생략하고/ 미완성 문장을 썼다’ <마라톤9>

마라톤으로 형을 찾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TV 출연을 결심했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전국노래자랑. 이미 지역에서 열리는 한약축제 시민노래자랑대회에서 우수상까지 수상했던 그이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정 교장은 2016년 6월 13번째 도전 끝에 군위편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때 형을 찾는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지만 아직 형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애타게 형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그해 세상을 떠났다.

‘못 잊어/ 못 잊을 사람이라서/ 마음 밖으로 꺼내어/ 큰 소리로 불러봅니다/ 바람에 날려/ 한 줄기 소식이라도 되어 줄까요/ 빗물과 범벅된/ 그대 그리워 부른 애곡을/ 들으셨나요/ 머리가 커서/ 대갈통이라고 놀림 당하던/ 어릴 적 그 형은/ 날 보고 소식 전해올까요’ <형>

이렇듯 그의 생활은 곧 시가 됐다.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어김없이 10㎞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6시면 출근한다. 아침에 교장실에서 쓴 시 한 편을 지인들에게 폰으로 배달한다.

하지만 그는 시인·가수·마라톤 선수이기 전에 훌륭한 교육자다. 한자교육과 과학교육에 열성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아침 자습시간에 모두 한자공부를 한다. 전교생이 모두 한자급수자격 취득을 하는 게 정 교장의 목표다. 정 교장도 한자급수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1종대형운전면허·소방안전관리사·특수교사자격증도 갖고 있다. 학교 안전관리와 스쿨버스 운전자 결원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란다.

1982년 영천 지곡초등학교에서 시작한 교직생활 36년 가운데 경주에서 지낸 8년을 제외한 28년을 영천에서만 근무한 것도 특이한 이력이다. 평교사로 근무하던 학교에 교감·교장이 돼 다시 근무하고 있다. 10여 년 전 포은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그해 36명 반 아이들 가운데 32명이 한자급수 5급 자격을 취득한 것은 이 학교의 전설로 남아 있다.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최순옥 교사는 “올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육상 800m와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동메달을 땄다. 과학발명품대회와 과학전람회에서도 큰 성과를 이루었다. 솔선하며 모범을 보여주는 교장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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