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의 사필귀정] 사이버 공간과 야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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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0   |  발행일 2018-06-20 제30면   |  수정 2018-06-20
[박순진의 사필귀정] 사이버 공간과 야만의 시대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세상이 험악하면 길을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바깥 사정을 살피고 여러 방비책도 생각해야 한다. 사이버 공간도 마찬가지다. 요즈음 우리네 사이버 공간이 날로 험악해지면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두려워질 때가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당한 인권침해와 비이성적 공격행동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누구라도 편리하게 글을 게시하고 열람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한 개인이 올린 글이나 영상은 불특정 다수에게 매우 빠른 속도로 무차별적으로 유포될 수 있다.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글과 영상에 대해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환호하거나 지지하기도 하고 반대로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포털 게시판이 난장판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으며,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이슈마다 욕설과 혐오의 댓글이 넘쳐난다.

유력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널리 알려진 연예인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사실인양 유포되는 일이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은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이나 글이 대폭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일단 영상이나 글이 게시되어 대중의 주목을 받고 확산되기 시작하면 피해자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러다 보니 힘없는 개인이 대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일방적으로 비난 받거나 모욕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가해자가 게시한 영상이나 글에 대해 무책임하게 동조하고 심지어 욕설과 혐오의 말을 쏟아내는 다수의 횡포에 맞서는 일은 피해자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적 열세가 뚜렷하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간단한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으면서 제멋대로 예단하는 태도가 팽배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다수가 저지르는 가해에 편승하고 동조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일방적 공격에 노출된 힘없는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피해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피해 회복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법적인 구제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신속하지도 않고 만족스럽지도 않다. 가해자에 동조하는 대중은 혼자 자기 방에 앉아서 손쉽게 키보드로 입력하면 그만이다. 이것은 어쩌면 익명성을 무기로 다수가 벌이는 일종의 카니발에 다름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타인을 일방적으로 모욕하고 공격하는 일이 범죄행위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동의한다. 어떤 개인이 사실여부가 불분명한 일로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와 무관한 대중이 개입하여 가해자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일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비이성적인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온라인이라 할지라도 분노와 혐오의 언어를 무책임하게 내뱉거나 타인이 저지르는 가해 행동에 동조하는 일은 법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윤리적 각성과 깊은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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