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에스페란토 매력적 발음에 저절로 힐링”

  • 최미애,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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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1 08:06  |  수정 2018-06-21 08:07  |  발행일 2018-06-21 제23면
■ 대구서 이색 외국어를 즐기는 사람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영어 학원에 가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른이 돼서는 취업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토익 시험을 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 최근에는 공부, 취업이 아닌 목적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남들이 잘 모르는, 많이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외국어를 배워 여행을 가기도 하고, 언어를 배우는 과정 그 자체가 흥미롭기도 하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대구에서 스페인어와 에스페란토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공부·취업 상관없이 언어 배우는 과정 자체에 재미
2015년 첫걸음 뗀 봉산동 ‘베로니카 스페인어 교실’
3번째 산티아고行 준비 부부·통역봉사 하려는 퇴직자
다양한 연령 수강생 문법∼회화 주 2시간 맞춤형 수업

봉덕동 ‘한국에스페란토協 대구지부’엔 65명 회원
화요일 저녁마다 협회 잡지 등으로 ‘만국공용어’공부
70代 회원 “언어 유희성·논리성에 끌려 50여년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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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봉산문화거리 베로니카 스페인어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

◆“스페인어 발음이 매력적이에요”

지난 18일 오후 8시 대구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한 교습소. 스페인어 책을 손에 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곳은 베로니카 스페인어 교실이다. 지역에서 스페인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으로 2015년 문을 열었다. 전체 수업 과정은 기초문법부터 시작해 회화단계로 구성되며, 수업은 1주일에 2시간 진행된다. 한 수업에 8명 남짓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바로 발견할 수 있어 맞춤형 수업으로 진행된다.

한 클래스 수강생은 8명 남짓으로, 이날은 대부분 중년을 넘긴 수강생들이 있었다. 강의를 맡고 있는 정영옥 베로니카 스페인어 교실 대표는 “스페인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강의를 하게 됐다. 학생부터 직장인, 주부까지 다양한 사람이 수강을 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수강생들은 스페인어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부부가 함께 듣는 수강생도 있었다. 김진호(61)·엄미련(60) 부부는 올해 스페인의 순례길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여행을 떠난다. 2번이나 갔다 왔지만 올해 겨울 또 가기로 결심했다. 김진호씨는 “처음 갔을 때는 단지 경치만 봤지만, 스페인어를 조금씩 배워 두 번째 갔을 때는 조금이나마 구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제대로 대화하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 스페인어를 계속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은퇴한 이동수씨(64)는 스페인어를 활용해 통역 봉사를 하는 것이 꿈이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대구를 찾지만 제대로 통역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씨는 “3년 정도 배웠는데, 나중에 통역가이드를 해보고 싶다. 스페인어는 영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수강생 김인주씨(63)는 “일단 다른 언어보다 쉽다. 영어와 비슷한 면도 있어 쉽게 접할 수 있고 발음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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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대구지부에 모인 회원들이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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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스페란토협회에서 매달 발간하는 잡지.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만국 공통어’라고 하면 영어를 대부분 떠올린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어 못지않은 국제공용어가 있다. 1887년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창안한 ‘에스페란토(Esperanto)’다.‘1민족 2언어주의’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중립적인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자는 일종의 ‘언어 평등권 운동’에서 출발했다. 전 세계에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이 퍼져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논어, 삼국지 등이 에스페란토로 번역되기도 했다. 한국에도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활동 중이며, 대구에도 협회의 지부가 있다. 65명이 대구 지부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으며, 실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15명 정도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대구지부(대구 남구 봉덕동)에는 매주 화요일 저녁 회원들이 모여 에스페란토를 배운다. 지난 19일 찾은 대구지부 사무실에도 김영명(80)·김시헌(71)·곽종훈씨(72)가 책상에 앉아 세계에스페란토협회에서 매달 발간하는 잡지를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20대 때 대학 교양 강의 등으로 에스페란토를 접해 지금까지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인 에스페란토를 50년 넘게 공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명씨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나만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게 흥미롭다. ‘전쟁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언어고,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평등한 언어라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단어 앞뒤에 또 단어를 붙여가며 워드 플레이(Wordplay·언어유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에스페란토의 흥미로운 점이다. 김시헌씨는 “대학교 때 호기심이 생겨서 처음 배웠는데 예외가 많지 않고, 논리적인 언어라는 점이 좋았다. 영진전문대 교수 재직 시절에 에스페란토 동아리를 만들어 지도교수로도 활동했는데 퇴임 후에도 계속 배우면서 노후 생활에도 좋은 취미가 되고 있다”고 했다.

글·사진=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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