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한국당의 눌러앉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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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2   |  발행일 2018-06-22 제23면   |  수정 2018-06-22
[조정래 칼럼] 한국당의 눌러앉기

‘무릎을 꿇은 건지 눌러앉은 건지….’ 시사만화가 김경수는 최근 ‘매일 희평’을 통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대국민 사과 퍼포먼스에 대해 이러한 관전평을 내놓았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펼침막 아래 막상 꿇어앉긴 했는데, 혁신비대위의 ‘다 엎고 새판 짭시다’라는 훈수성 제의에는 일제히 두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라니…. 촌철살인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유례없이 참패를 당한 한국당의 현주소와 미래, 그리고 의원들의 복잡한 심사를 이 한 컷 만화보다 더 신랄하게, 그러나 적실하게 그려놓은 글이나 시사만화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번 주 칼럼 제목 ‘눌러앉기’는 김 화백 희평의 표절(?)임을 미리 밝히고, 평소 그 난을 통해 시사점을 얻곤 하는 애독자로서 사적인 감사의 마음도 전한다.

한국당 의원들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그림은 낯설지 않다. 한국당은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인 2016년 총선 직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며 읍소했다. 기시감만이 아니란 거다. 반성이 말로만 맴돌았을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 이러한 실상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셀프 개혁의 한계를 여실히 노정한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뭔가를 개혁하거나 개선하겠다고 하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불신 사회에 산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이 백번 그러하더라도 보수자멸로 어부지리를 얻은 민주당이 이를 두고 ‘할리우드 액션’이니 ‘위장반성쇼’니 하며 조롱할 일은 아니다. 승자의 아량은 고사하고 국민적 지지에 대한 일말의 감사와 겸손의 마음조차 없으니, 이기고도 이겼다 할 수 없음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등 보수는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탄핵을 당했다. 대국민 사죄와 반성은 당연한 수순이고, 더 이상 탄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보수재건이 필수다. 한국당만 해도 당내 수습책이 백가쟁명식 처방으로 쏟아져 나오고 당외에서 날아드는 주문도 넘쳐난다. 이처럼 난무하는 진단과 처방전들 역시 새로운 게 아니다. 문제는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응답하지 않는 직무유기에 있다. 보수든 진보든 정치인들은 정치개혁은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알고도 안 하는 거다. 시민의 정치의식은 정치권을 꿰뚫어 보며 정치인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당이 내놓은 보수재건책 중 인적 청산도 옳고 기득권 내려놓기도 맞다. 인적 청산은 홍준표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마지막 막말’에 답이 있다. 이른바 미처 청산하지 못한 9가지 유형의 당내 인사다. 구체적으로 누굴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알 만하고 공감도 간다. 비상대책위가 전권을 부여받게 되면 일정 부분 인적 쇄신을 성공적으로 해내리라 믿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인적 청산 또한 하나의 수단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적 청산은 제도와 법 개선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금껏 해 온 것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임시방편적·인위적 인적 쇄신에 그치게 된다.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도 마찬가지다. 선거 참패 이후 살생부 유포와 ‘네 탓’ 공방은 익히 봐온 수순이지만 대부분 혁신에는 실패했고, 근본적인 정치 체질 개선은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다. 지금까지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그 신선했던 피가 오래잖아 상하지 않은 적도 없었다. 인적 청산보다는 시스템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명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귀납된다. 선거 때만 갖는 유권자 시민의 응징권은 국민소환제 도입으로 상시 작동돼야 마땅하고, 지방정치인에게 족쇄를 채우는 기초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국회의원들이 공약만 지켰더라도 벌써 폐지됐어야 했다. 지방 정당의 출현을 막아놓은 정당법 개정도 마찬가지.

법과 제도의 개혁과 함께 보수의 가치를 새로이 정립하기 위해서는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는 게 급선무이며, 그러자면 예전에 익히 보던 개혁안의 재탕으로는 어림도 없다. 한국당 의원들의 꿇어앉기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이미 제기된, 의원들이 너무나 잘 숙지하고 있는 특권 내려놓기와 반(反) 민주적 법안부터 개혁하자고 나서야 한다. ‘꿇는 시늉, 눌러앉기’ 탈피가 보수재건의 시작이자 끝이다.

조정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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