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식물도감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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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2   |  발행일 2018-06-22 제42면   |  수정 2018-06-22
하나 그리고 둘
20180622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정폭력,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

가해자와 피해자 탐구·통찰…감정 정교함 더해
판사 시점에서 시작, 앞집 노부인의 시점 마무리

‘아직 끝나지 않았다’(감독 자비에 르그랑)는 약 14분간 법정 심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판사의 앞에는 이혼한 ‘미리암’(레아 드루케)의 변호사와 ‘앙투안’(드니 메노셰)의 변호사가 앉아 있고, 양측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된다. 그들 가운데는 아버지와 격주로 한 번 보는 의무를 거부하는 11세 소년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편지가 있다. 판사는 미리암에게는 아이들이 엄마의 편만 드는 게 문제의 일면이라고 말하고, 앙투안에게는 줄리앙이 왜 아버지와 만나기를 거부하는지 묻는다. 이 긴 법정신만으로는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이들의 상황을 열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끌어올리는 긴장감과 서스펜스 연출이 압권이다.

앙투안을 제외한 모든 가족은 그의 폭력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한편 앙투안은 아직 헤어진 가족들에게 미련이 남아 있고, 그들이 자신을 영영 떠나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노심초사한다. 앙투안이 전 아내와 아이들이 이사 간 곳에 집착하는 이유, 미리암이 그와의 대화를 피하고, 줄리앙이 거짓말을 하고, 딸 ‘조세핀’(마틸드 오느뵈)이 남자친구에게 의지하는 이유가 이 두려움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된다.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모두의 상황이 애처롭기는 하지만 앙투안의 폭력성만큼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는 점점 분노의 파고를 높이면서 가족들에게 접근해 온다. 가정 폭력의 가해자 및 피해자에 대한 깊은 탐구와 통찰이 인물들이 사건의 마디마디마다 느끼는 감정에 정교함을 더한다. 특히 어른들의 갈등 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까지 담으려 한 점은 인상적이다. 앙투안의 폭력성이 분출될 때까지 증폭되는 공포는 관객들까지 숨 막히게 하고 부모도, 자녀도, 법정도 통제할 수 없는 앙투안의 불안한 심리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심장을 떨리게 한다.

영화가 판사의 시점으로 시작하고, 앞 집 노부인의 시점에서 끝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판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이웃은 보고, 판사가 막지 못한 문제를 이웃은 해결한다. 판사도 이웃도 영화 중반부에는 등장시키지 않고 미리암의 가정과 스쳐지나가게 만든 구성은 가정 폭력을 둘러싼 사법제도와 이웃의 역할을 환기시킨다. 아직도 이틀에 한 명 정도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사망에 이르고 있는 프랑스에서 이는 진지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감독은 일차적으로 사법제도의 맹점을 겨냥하고 있지만 일방적인 시선은 보내지 않는다. 심리 한 건당 짧은 시간밖에는 낼 수 없는 판사들의 현실적 어려움, 노부인 외의 이웃들의 무관심, 가정 폭력에 대해 서로 쉬쉬하는 풍토도 간략히 묘사돼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폭력을,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게 하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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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감

혼자가 좋아도 밥은 함께 먹고싶어

‘누가 직접 지어준 밥은 마음을 달래준다’ 교감
우연히 만난 남녀…식재료 채취하며 건강한 요리

비혼율이 높아지면서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소위 ‘혼밥’ ‘혼술’ 문화가 생긴 지도 오래인데, 또 한편에서는 민박집이든 가정집이든 함께 밥을 해먹는 예능 프로그램도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일반인들의 연애와 결혼담을 주기적으로 첫 페이지에 띄우며 누리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고 혼자 누리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이면에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밥을 먹는 관계(식구)에 대한 욕구 또한 잠재해 있는 것 같다. ‘식물도감’(감독 미키 코이치로)은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이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직장인 ‘사야카’(타카하타 미츠키)는 길에 쓰러져 있는 ‘이츠키’(이와타 타카노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설레는 사랑, 예정된 이별, 의지적 재회라는 러브 스토리는 고전적이지만, 직접 들에서 따온 식물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부분은 현대의 ‘소확행(小確幸)’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사야카는 처음 이츠키가 해준 오믈렛과 된장국을 먹고 나서 ‘누가 직접 지어준 밥은 마음을 달래준다’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후 두 사람은 같은 집에 살면서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 머위·달래 등 나물을 채취하고 그것으로 갖가지 요리를 해 먹는다. 마트가 아니라 들판에서 식재료를 얻는 사야카와 이츠키의 모습이 싱그럽고 건강하게 묘사된다. 편안한 녹색의 자연과 건강한 집 밥, 들뜬 두 남녀의 감정이 시각적·정서적으로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서사를 끌어간다. 그렇게 함께 있음으로써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면면은 직장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인해 떨어져 있는 동안 올라오는 불안감과 대비를 이룬다. 불안에서 출발한 질투와 분노는 갈등을 만들기도 하지만, 단순한 동거인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추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혼자 있는 시간의 필요성과 소중함도 놓치지 않는다. 아픔을 극복하고 홀로 선 다음에야 다시 함께하는 행복도 찾게 되는 결말은 다소 교훈적이지만 장르 영화로서 무던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일본영화에 여성이 연인에게 요리를 해주는 장면이 관습적으로 등장했던 것에 반해 ‘식물도감’에서는 역할이 뒤바뀌어 있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공히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사야카와 이츠키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특히 극중 표현대로 ‘좋은 표정’을 가진 사야카 역의 타카하타 미츠키는 눈여겨볼 만한 배우다. 얼굴에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순수한 사야카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 초여름의 파릇한 색깔, 그 산뜻함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장르: 멜로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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