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탐정:리턴즈’ 성동일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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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2   |  발행일 2018-06-22 제43면   |  수정 2018-06-22
“통편집 당해도 기분좋은 작품…충분한 재미와 즐거움 줘 만족”
20180622

“동일아, 너 연기가 많이 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27년 차 내공의 베테랑 배우 성동일이지만 영화 ‘반드시 잡는다’(2017)에 함께 출연했던 선배 백윤식의 이 한마디를 그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도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아직도 연기를 배워나가고 있는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됐다.” 성동일은 여전히 연기가 고프다. 자신을 소진시키고도 끝내 식상함을 준다는 이유로 쓸쓸히 퇴장했던 다작배우의 전철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그는 연기와의 끈을 잠시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배우가 놀면 뭐하나. 대중 앞에 항상 얼굴을 비쳐야 배우지.” 대중은 그런 성동일의 존재감에 신뢰감을 보낸다. 드라마 ‘추노’(2010)의 추노꾼 천지호를 시작으로 한번도 대중에게 실망을 안겨준 적 없는 그다. 가벼운 코믹 연기부터 진지한 감정 연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그가 ‘탐정:더 비기닝’(2015)의 속편인 ‘탐정:리턴즈’(이하 리턴즈)로 관객을 찾았다. ‘더 비기닝’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노태수(성동일)와 강대만(권상우)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며 웃음을 유발했다면, ‘리턴즈’에선 전직 사이버수사대 요원 여치(이광수)까지 가세해 판을 키웠다. “노태수에게 일어난 일들은 충분히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였다”는 성동일은 “그래서 부담 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며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만큼 믿고 보는 배우 성동일의 또 다른 면모를 기대해도 좋다는 얘기다.

“韓영화 흔치않은 탐정 소재…시리즈까지 나와
휴직계 낸 경찰이라 범인 제압할 방법에 난감
상우아들 장난감총 설정도…이야기짜기 어려움
감독만 바뀌고 작가·스태프 모두 그대로 작업
이광수 합류, 무게 중심 지키려 애드리브 자제”

“사람과의 인연 중시…작품보다 스태프에 애착
인생 망가지지 않기 위해 사람은 잃지 말아야
작품 고르는 능력보다 유행코드에 잘 따라갈 뿐”

배우가 천직, 그래서 난 다작 배우
코믹∼감정 연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 구가
“놀면 뭐하나 대중앞에 얼굴을 비쳐야 배우지
영화 한편 찍고 평생 노는 게 배우는 아니잖나”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

“배우인 내가 봐도 재밌는 영화다. 마지막까지 소소한 웃음을 주고 끝나지 않나. 상우와 ‘이건 된다. 땅이라도 보러 다녀야 하는 거 아냐’라고 농담까지 주고받았다.(웃음) 특히 새롭다고 느꼈던 건 배우마다 자기가 욕심을 낸 신들이 통편집을 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을 보면서 ‘신이 저렇게 연결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만큼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재미와 즐거움을 준 것 같아서 만족한다. 통편집을 당해도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탐정이야기는 국내에선 만들기가 쉽지 않은 소재다. 그럼에도 시리즈까지 나왔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 탐정이야기는 한국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 일단 탐정은 공권력이 없다. 범인이 총을 들어도 탐정은 그럴 수 없다는 얘기다. 범인과 맞닥뜨려도 맨 몸으로 싸워야 하고 정보도 익명으로 얻어야 한다. 제작부에서 고민이 많았다. ‘더 비기닝’ 때는 내가 현직 경찰이라 총을 휴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휴직계를 낸 상태라 총과 경찰증도 반납했다. 어떻게 범인을 제압할지 난감했다. 내가 성룡이나 이연걸처럼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문제는 관객들도 답답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설정한 게 상우 아들의 장난감총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짜내기가 힘들었다. 가뜩이나 국내 관객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따지는 편이라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리즈라는 점도 그렇고 아무래도 다른 작품보다는 더 애착이 갈 것 같다. 물론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겠지만.

“그래서 손가락을 안 깨문다.(웃음) 어떤 작품에 애착이 더 가느냐고 물어 보면 솔직히 작업을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더 애착이 간다. 내 나이가 되니 사람을 사고 싶지 작품을 사고 싶지는 않다. 절대 사람은 잃지 말아야 한다. 작품이 망가졌다고 내 인생이 망가지진 않지만 사람을 잃으면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먹기 싫은 술도 자주 먹는다.”(웃음)

▶‘리턴즈’는 ‘미씽: 사라진 여자’ ‘어깨너머의 연인’ 등을 연출한 이언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톤 앤 매너의 변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데 특별히 달라졌다고 느껴진 건 없나.

“‘더 비긴즈’는 캐릭터를 소개하느라 사건이 후반부로 밀렸다면 ‘리턴즈’는 캐릭터 소개가 필요없으니 바로 사건으로 직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감독만 바뀌었을 뿐 각본도 ‘더 비기닝’ 작가가 썼고 스태프도 모두 그 때 함께했던 분들이다. 다만 이언희 감독이 디테일한 여성 위주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분이라 장르가 다른 ‘리턴즈’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코미디는 나와 상우, 그리고 광수가 담당했고, 액션은 무술감독이 다 알아서 만들어준다. 카메라, 조명, 미술 등도 마찬가지다. 요즘 영화현장은 이렇게 전문 분야가 각각 나뉘어져 있어서 사실 별 부담이 없다. 이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디테일한 연출에 더해 편집에만 신경을 쓰면 됐는데, 결과적으로 전작보다 깊이와 무게감이 있는 작품으로 완성됐다.”

▶전작의 버디무비 구도에서 이광수가 새롭게 합류했다. 이야기가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없었나.

“전혀. 앞서 말했듯이 난 하루 종일 힘들 게 찍은 내 신이 통편집이 돼도 상관이 없다. 사실 내가 얼굴이 많이 나온다고 좋아할 배우는 아니지 않나. 이번엔 광수가 합류했기 때문에 나는 재미보다는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케미가 장난이 아닐테니 나는 눌러주면서 가자고 말이다. 애드리브도 가급적 자제했다. 만약 나까지 설쳐대면 무게 중심이 흔들려서 ‘개그 콘서트’가 돼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연작들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을 고르는 혜안이 있는 것 같다.

“흐름에 편승을 잘해서 유행 코드를 잘 따라가는 것뿐이다. ‘신과 함께’의 김용화 감독과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감독이 그 중 나하고 코드가 잘 맞는 편인데, 두 사람은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는 영화를 만드는 걸 철저히 지양한다. 무조건 재미 위주다. 김용화 감독의 롤모델이 그래서 스필버그 감독이다. 스필버그가 세계에서 재밌는 영화를 가장 잘 만들지 않나. 나 역시 재미를 가장 우선시하기에 김용화 감독의 생각과 부합되는 점이 많다.”

▶당신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후배들한테 네 연기가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담는 건 세상 이야기지 국영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우리 아이 수학도 못 가르쳐주는 내가 누굴 가르치겠나. 배우의 단점이 답을 먼저 안다는 거다. 관객에게 답을 애써 감추려고 해도 보이고, 너무 안해도 보인다. 그러니 관객이 반전을 알기 전까지는 배우도 모르고 연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는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대리시험을 치르듯 해야 하는 게 연기다. 후배들에게도 답을 모르고 열심히 하는 놈은 만점을 받고 답을 알고 가는 놈은 절대 만점을 못 받는다고 항상 말한다.”

▶그간 숨가쁘게 달려왔다. 자신을 너무 소진시킨다고 생각하진 않나.

“아무리 수억원짜리 슈퍼카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용하지 않고 집에 방치해 두면 무용지물이 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매일 학교를 다니면서 예습·복습하는 건 당연한 거다. 한 달에 한 번 학교가서 공부를 잘하고, 교우관계가 좋아지고, 단체생활을 제대로 배울 수는 없다. 예전 모 후배가 영화 출연제의를 거절해서 왜 그랬냐고 물은 적이 있다. 더 좋은 작품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야, 미친놈아 이렇게 놀고 있는데 너도 참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핀잔을 줬다. 물론 자기와 안맞는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고 연기의 끈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대중과 만나야 배우다. 꾸준히 하고 있어야 연기도 늘고 대사도 더 잘 외워진다. 내가 다작배우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 연기가 늘었고 더 부지런해졌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항상 쉬지 말라고 한다. 배우가 놀아서 뭐하겠나. 대중 앞에서 일을 해야 배우지. 영화 한 편 찍고 평생 노는 게 배우는 아니잖나. 배우도 좀 부지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배우처럼 좋은 직업이 세상에 어딨나. 먹여주지, 재워주지, 그리고 돈까지 주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할 일이 있다는 게 그래서 늘 감사하다.”

▶연기력을 떠나, 커다란 부침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당신만의 또 다른 비결이 있다면.

“내가 사람과의 인연을 중시한다. 우정출연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작을 예로 들면 ‘더 킹’ ‘안시성’ ‘레슬러’ 등은 배우들과의 인연으로 출연료 대신 술을 얻어 먹는 대가로 출연했다. 우리 집사람도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즐겨하는 게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스포츠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내 나이 때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록 망했지만 나도 제작비 280억원짜리 ‘미스터 고’의 주연까지 한 놈이다. 그렇다고 단역이나 우정출연은 자존심 상해서 안한다? 그런 건 없다. 내가 이 정도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배역이나 비중은 따지지 않는다. 다만 남의 돈을 받고 출연한다면 최소한의 공구는 들고 달려들어야 한다. 망치 하나만 달랑 가지고 의자를 만들 수는 없는 거니까. 만원을 내고 성동일 나오는 영화를 보러갔는데 천원어치밖에 안 된다면 그건 잘못된 거다. 만원은 아니더라도 최소 8천원어치 정도의 재미는 안겨줘야 배우의 의무를 다한 거다. 늘 그런 자세로 연기에 임했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김현수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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