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천조장사전별도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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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3   |  발행일 2018-06-23 제23면   |  수정 2018-06-23

정유재란이 한창이던 1598년 5월26일 선조는 명나라 장수 팽신고(彭信古)를 위해 술자리를 베풀었다. 주흥이 달아오르자 팽신고는 선조에게 자신의 휘하에 얼굴 모습이 다른 신병(神兵)이 있다며 자랑했다. 그 신병은 파랑국(波浪國) 사람이며, 파랑국은 바다 셋을 건너야 하는데 조선과의 거리가 15만리 정도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은 팽신고가 소개한 신병의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노란 눈동자에 얼굴은 검고 사지와 온몸도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모두 곱슬이고 검은 양모(羊毛)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바다 밑에 잠수해 적선을 공격할 수 있고, 며칠 동안 물속에 있으면서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다.”

팽신고가 말한 파랑국은 1557년 마카오반도를 조차한 포르투갈이다. 외모로 보아 신병은 포르투갈 출신 흑인용병이 분명하다. 일명 ‘해귀(海鬼·바다 귀신)’로 불린 이들의 주특기는 오늘날로 말하면 수중폭파 특수대원쯤 된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특수부대는 ‘해귀’만이 아니다. 믿기지 않지만 원숭이로 구성된 기마부대도 적진에 돌격해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펼쳤다.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와 신녕현감 손기양의 일기, 조경남의 ‘난중잡록’ 등에 기록이 나온다. 난중잡록에는 “군사 가운데 초원(楚猿·원숭이) 4마리가 있어 말을 타고 다루는 솜씨가 사람과 같았다. 몸뚱이는 큰 고양이를 닮았다”고 적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의 논문 ‘임진왜란 소사전투의 명 원군(援軍) 원숭이 기병대’가 주목을 받았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해귀’와 원숭이 기마병의 존재는 조선화가 김수운이 철군하는 명군의 모습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에서도 확인된다. 수레를 탄 해귀 4명과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는 깃발 아래 10마리의 유인원이 칼을 들고 행진하는 장면이 또렷이 그려져 있다. ‘천조장사전별도’는 안동의 풍산김씨 오미동 문중에서 보관해오던 화첩인 ‘세전서화첩’ 속에 포함돼 있다. 이 화첩은 현재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이 보관하고 있다.

‘천조장사전별도’와 같은 희귀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안동 국학진흥원은 역사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다. 소장 자료가 지난달에 50만점을 돌파했다. 수집·보관하고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스토리텔링이나 판타지 영화·게임 등의 소재로도 널리 활용됐으면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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