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에서 주체로… 에이즈 인식 바꾸는 ‘한국의 하우징웍스’

  • 이연정
  • |
  • 입력 2018-06-30 08:09  |  수정 2018-06-30 08:10  |  발행일 2018-06-30 제14면
(美 뉴욕 에이즈 사회적 기업)
■ 국내 최초 에이즈 협동조합
‘레드리본’사회적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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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서호동 반야월역 2번 출구 인근에 자리한 카페 ‘빅핸즈’.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이 에이즈 인식 개선을 위해 2013년 문을 열었다.


2013년 감염·비감염인 함께 구성
나눔·공동체 행복·가치창출 위해
동구 서호동 카페 ‘빅핸즈’ 운영
일자리·고립문제 등 해결해 주목

더치커피·수제청·비누 판매하고
직접 그린 20여점의 그림도 전시
수익금 에이즈 인식개선에 사용

지역주민과 상생·연대의 길 모색
내달엔 혁신도시 내 2호점 오픈


“미국의 ‘하우징웍스’라고 아세요? 에이즈에 감염된 뉴욕의 저임금 근로자,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한 사회적 기업이에요. 중고할인 상점, 카페 서점, 음식 케이터링 서비스 운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에이즈에 대한 인식 개선을 꾀하고 감염인들에게도 고용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죠.”

김지영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이하 레드리본) 대표의 동그랗고 까만 눈이 반짝였다. 하우징웍스처럼 카페 ‘빅핸즈’를 운영하고 있는 레드리본은 2013년 구성된 국내 최초, 유일한 에이즈 관련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에이즈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김 대표는 “15년간 NGO 활동을 해오며 사회적 약자들은 계속 수혜자로서 지원만 받는 형태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들을 조합 구성원으로 포함시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돕고, 함께 당당한 사회적 주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출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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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인식 개선’ 카페 빅핸즈 운영

지난 28일 오전 대구 동구 서호동 반야월역 인근에 자리한 카페 ‘빅핸즈’를 찾았다. 계단을 따라 각종 홍보 포스터와 액자들이 걸렸다. 액자에는 한붓 한붓 정성 들인 꽃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김 대표는 “모두 감염인들이 손수 그린 그림”이라며 “시민들이 카페를 찾아 자연스럽게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2층 카페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금호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아담한 실내에서 도심 속의 작은 여유가 느껴졌다. 한편에는 회의, 파티 등을 즐길 수 있는 세미나룸이 마련돼 있었다.

카페 빅핸즈는 에이즈 감염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인 일자리와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반 카페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감염인 자활 지원을 위한 전문 바리스타 양성 교육 등 열린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 대표는 “감염인들이 용기를 내서 사회로 나갔다가도 다시 쉼터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홀로서기가 힘든 것”이라며 “이들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다시 잇기 위해 관련 활동가들과 봉사자, 후원자, 감염인 등이 함께 이끌어가는 건강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빅핸즈는 카페 운영뿐만 아니라 더치커피와 핸드메이드 수제청, 에이즈감염인 작가들이 직접 그린 그림 20여점을 담은 치유카드 엽서, 수제 천연비누 등을 생산,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학술대회나 세미나, 리셉션, 전시회, 박람회, 기업 및 학교 행사, 각종 이벤트를 대상으로 음료와 디저트, 컵과일 등 케이터링 서비스를 펼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수익금 전액은 에이즈 인식개선을 위한 공익사업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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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의 김지영 대표(오른쪽)와 허향 사무처장이 ‘큰 박수·큰 도움·큰 격려’를 뜻하는 빅핸즈의 손 모양 로고를 보여주고 있다.

◆감염인들의 꿈터, 쉼터, 일터로

레드리본이 설립된 지 어느덧 5년째, 이제는 대구를 넘어 전국에 이름이 알려지고 빅핸즈를 찾는 손님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국내 첫 에이즈 관련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보니 처음에는 좌충우돌도 많았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첫 발자국이었다. 김 대표는 “같은 가치와 목표를 가진 이들과 함께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초창기에는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어 고민이 많았다”며 “지역 특산물 등을 홍보하는 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는데 아무도 기술이 없으니 일단 배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영상 기술을 배우는 데만 1년 가까이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고민을 이어가던 레드리본이 결국 결정한 방안은 카페 운영이었다.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레드리본이 지향하는 나눔, 공동체 행복, 가치 창출에 딱 맞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대표를 비롯해 허향 사무처장, 한설희 매니저, 김선미 이사, 양정미 이사와 감염인인 여운씨 등 조합원들이 힘을 모았다. 정몽구재단의 H온드림오디션에서 소셜카페 펠로로 선정돼 1억1천만원을 지원받고 후원 콘서트를 통해 2천만원가량을 모으면서 걱정이 많았던 자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빅핸즈 오픈 이후 사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감염인들이 집 이외에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즈예방협회도 그들에게 열려있지만 상담실이라는 공간보다는 카페가 덜 거부감이 들지 않겠나”라며 “그들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조금씩 숨구멍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대신 연대·상생

빅핸즈 인근에는 동구지역의 또 다른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일반 업체들이었다면 서로 으르렁대며 경쟁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레드리본은 이들과 손을 잡고 함께 생산·소비하는 모델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커피 원두나 음료를 만들기 위한 의성 오미자 등을 공동구매하고 세미나실을 나눠 쓰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식이다. 김 대표는 “지역 내에서 함께 연대, 상생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선순환 경제를 구축함으로써 공동의 가치를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아래에서 위로, 주민들의 자발적인 고민과 필요, 참여로 인해 사회적경제가 만들어지는 특성상 좀 더 세부적인 구(區) 단위 지원·협력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사회적 경제는 우선에 주어지는 돈으로 출발하게 되면 오래가지 못한다”며 “주민들이 필요로 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하고, 그것이 바로 사회적 경제의 기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세세하게 자신들의 뜻을 모으고 있는 주민들이 많지만 광역 단위에서 이를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관련 정책들이 많지만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으려면 좀 더 작은 단위의 기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드리본은 7월4일 동구 혁신도시 내 한국정보화진흥원에 2호점을 오픈한다. 정보화진흥원 직원 협동조합과 협약을 맺고 운영하게 된 것.

김 대표는 “빅핸즈로 인해 많은 분들이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기회가 된다면 3호점을 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며 “나아가 우리의 뜻있는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소셜 프랜차이즈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8월에 인증기업을 졸업하면 보조금 없이 정말 자생해야 하는 기업이 된다. 졸업을 앞두고 1호점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글·사진=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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