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문명반대론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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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9 07:47  |  수정 2018-10-01 13:46  |  발행일 2018-07-09 제17면

인류 문명은 발전하는 것일까, 쇠퇴하는 것일까? 근대 이전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문명 쇠퇴론이 일반적이었다. 호메로스는 일찍이 황금시대가 있었지만 은과 동의 시대를 거쳐 현재의 철기시대로 쇠퇴했다고 했다. 공자도 하은주(夏殷周) 시대의 문명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했으며, 불교의 문명론 역시 부처 사후 기준 500년을 단위로 문명이 쇠퇴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명 발전론은 근대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 콩도르세를 위시한 계몽주의자들은 인류의 역사는 단순한 미개사회로부터 복잡한 문명사회로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진화론적 문명관은 이후 근대문명을 지배하는 흐름으로 이어져왔다.

문명 반대론은 문명 쇠퇴론과 일견 유사하지만 다르다. 문명 쇠퇴론은 문명이 쇠퇴하는 것이 필연적이고 따라서 그것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수동적이고 운명론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문명 반대론은 적극적으로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문명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는 실천적 운동이다. 프로이트는 ‘문명의 불안’이라는 책에서 인류의 문명은 곧 인간 본능의 억압이며 자기해체이자 파괴의 충동이라고 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역시 인간 해방과 문명 진보를 추구한 계몽의 기획 그 자체에 광기와 살육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홀로코스트는 어느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라 현대 문명에 내재된 ‘악의 평범성’에 내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우리가 미개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결코 무지몽매한 미신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인이 잃어가고 있는 대자연의 환경과 호흡을 같이하고 조화를 살리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인류학자 클라스트르 역시 남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는 결코 야만사회가 아닌 문명사회였으며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사회가 야만사회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존 저잔은 ‘문명에 반대한다’에서 구석기시대가 인류 최초의 풍요사회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는 자연 상태에 머물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며, 자연 상태는 이 세상의 진정한 청춘기이며, 그 후의 모든 과정은 종의 쇠퇴를 향한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문명은 곧 질병이다. 특히 선진 사회일수록 그 질병은 골이 깊다. 그 질병의 한 가지 이름은 ‘빈곤의 현대화’다.

‘선진 산업사회에서 빈곤의 현대화란 텔레비전 기상 캐스터건 교육자건 간에 전문가가 공인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전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의사에게 치료받지 않으면 신체의 불편은 견딜 수 없이 힘든 것이 된다는 것, 서로 떨어진 지역을 차량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친구와 이웃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의 세계와 떨어져 살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도 모르고 느끼는 대로 살고 있지도 못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구석기 식단’이라고 해 패스트푸드뿐 아니라 신석기 이후 인간이 먹게 된 곡물류까지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가 그 형성의 95%를 차지하는 구석기 시대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구석기 식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다. 리프킨도 ‘제3차 산업혁명’에서 현대 인류가 겪는 여러 가지 질병의 원인을 자연에서 분리된 삶에서 찾고 있다. 우리 몸속에 새겨진 오래된 기억은 깊은 숲속의 맑은 호수를 끊임없이 동경하도록 만들고 있는데, 이는 깊은 숲속의 맑은 호수가 기근과 갈증에 시달리던 우리의 조상들이 맑은 물과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 몸에는 인류의 전 역사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인류뿐만이 아니라 아메바 시절부터 파충류와 원인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억이 새겨져 있다. 깊은 숲속의 맑은 호수를 동경하는 마음은 아마 그런 잠재된 기억들의 표현일 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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