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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합천 합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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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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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왕국 지배자들의 철제무기 15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합천박물관 입구 연못에 ‘금장용봉문환두대도’를 재현한 칼자루가 꽂혀 있다.
옥전고분군 M3호분. 말머리가리개, 용봉문양 고리자루 큰칼. 투구 등이 발굴되었던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고령IC를 나와 합천 쌍책으로 향한다. 딸기 노점들이 길가에 줄줄이다. 향기도 사람도 없으니 때가 아닌 모양이다. 길은 내내 한산하다. 그러다 길가 낮은 하늘에서 달랑거리는 길 이름을 보고 피식 웃는다. ‘쌍쌍로’다. 고령의 쌍림면과 합천의 쌍책면은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두 지역을 잇는 길 이름이 쌍쌍로가 된 것이다. 쌍쌍로의 20여리는 벚꽃길이다. 봄이면 벚꽃과 개나리가 함께 흐드러지는데, 지방도 꽃길 중 가장 조용하다. 비밀이니 우리만 알자. 어느새 도계를 넘는다. 이제 길은 ‘황강옥전로’다. 황강 앞 옥전으로 가는 것이다.

옥전 고분군 출토 유물 전시
다라국 지배계층 집단 묘역으로 추정
5차례 발굴…3천점 넘는 유물 쏟아져
투구 13점, 갑옷 11벌, 말 갑옷도 3점
용·봉황 새겨진 둥근 칼머리의 큰 칼
박물관 입구 재현 ‘금장용봉문환두대도’

낮은 경사 있는 산책로 ‘다라국 오솔길’
풋풋한 풀향기·다양한 야생화에 취해
정상부 능선 옥전고분군…약 1천기 추산
구슬밭 옥전, 한무덤서 2천개나 발견


◆합천박물관

쌍책면(雙冊面)은 조선시대 때 초계군 초책면(初冊面)과 이책면(二冊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초책, 이책의 두 ‘책(冊)’을 빌려 쌍책이라 했다. 면소재지는 성산리(城山里)다. 옛 성터라는 뜻이다. 마을 남쪽에 황강이 흐르고 강변의 평지에 정치 경제의 핵심 시설들이 스트리트를 이루고 있다. 성산의 북쪽이 자연마을인 옥전(玉田)이다. 옥 같은 밭인가 했는데, 옥이 난 밭이다.

옥전의 야트막한 구릉에 합천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옛날 합천의 여러 가야왕국 중 다라국(多羅國)이 있었다. 우리의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중국 남조 양(梁)나라 무제 때 그려진 ‘양직공도(梁職貢圖)’라는 사신 그림에 다라국의 존재가 전해진다. 다라국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합천의 어디쯤일 거라고 비정해왔다. 그러다 성산리 옥전에서 가야시대의 고분 유적이 발견되고 1985년부터 5차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3천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학계에서는 옥전 고분군을 다라국 지배 집단의 묘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성산리 동쪽은 다라리(多羅里)다. 마을 모양이 달처럼 생겼다는 다라마을은 작은 동산의 골짜기 안에 오보록이 자리한다. 다라리의 존재는 다라국의 존재에 힘을 실어준다.

합천박물관에는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금동보관에서부터 은제 관, 금동관모, 비늘갑옷, 판갑옷, 금동투구, 마갑, 마주, 금동제안장, 금제귀걸이 등과 각종 토기류, 비취 곡옥과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장신구류 등을 볼 수 있다. 옥전 고분군의 대표 유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금장용봉문환두대도’다.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는 둥근 칼머리를 가진 큰 칼이다. 박물관 입구의 연못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커다란 칼자루가 그것이다. 실제 유물을 보면 정교한 장식과 세공에 숨소리도 조용해진다. 다라국의 멸망은 562년으로 추정되는데, 신라의 침략에 끝까지 맞서다 멸망한 대가야와 최후를 같이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유물들은 1천500여 년간 땅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다.

◆박물관의 뒤뜰, 옥전고분군

옥전고분군. 고대 다라국 지배자들의 묘역으로 추정되며 사적 제326호로 지정되어 있다. 박물관 뒤 언덕에는 합천 삼가면의 고분이 재현되어 있다(작은 사진).
박물관의 뒤편은 산책로가 있는 정원이다. ‘다라국의 오솔길’이라 명명된 산책로가 ‘다라국의 뜰’을 감싸고 있다. 낮은 경사가 있는 뜰이다. 좁은 수로가 저 위에서부터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폭신한 풀들은 장마 막바지의 습기를 함빡 머금고 있다. 뜰 오른쪽 가장자리로 난 약간 둔덕진 산책로는 수목의 그늘에 싸여 있고 군데군데 조각 작품과 벤치가 놓여 있다. 뜰의 왼쪽 가장자리로 난 산책로는 정원을 오롯이 펼치며 천천히 언덕 마루로 오른다. 이따금 산책로는 잔가지를 뻗어 뜰 안으로 파고든다. 그 유혹에 뜰 안으로 들어서면 무릎까지 풋풋한 풀 향기로 함빡 젖는다. 다양한 야생화들이 수북이 자라 있다. 작은 꽃들은 초록의 기세에 밀려 가까이 얼굴을 맞대어야 그 어여쁨이 보인다.

신선하고 느리게 오르면, 하나씩 그리고 와르르 동그란 봉분들이 다가온다.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이다. 고분들은 해발 50~80m 되는 야산의 정상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은 약 1천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몇 개의 능선에 나누어져서 넓게 분포하고 있다. 대다수는 봉토가 남아 있지 않아 외형상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특이하게 한 지역에 지름 20~30m의 고분 27기가 군집해 있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고분은 모두 146기다. 이곳에서 출토된 용이나 봉황문양의 환두대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라 한다. 한 무덤에서는 용봉문, 단봉문, 용문장의 환두대도가 한꺼번에 4자루나 발견되었고 다른 곳에서는 귀신의 얼굴이 새겨진 것도 나왔다. 투구는 모두 13점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철제이나 엄청나게 화려한 금동제도 있다. 비늘갑옷, 철판갑옷 등 갑옷은 11벌이나 발견되었고 말 투구는 무려 6점이나 확인되었다. 3벌이나 나온 말 갑옷 역시 대단히 희귀한 것이다. 이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우리나라의 고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최고 수장 급의 무덤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이 무덤들의 주인이 최고 지배자 층이라고 말한다. 이 고분군에 대한 연대와 성격은 아직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옥전이란, 구슬 밭. 그만큼 많은 구슬이 이 땅에서부터 나왔다. 한 무덤에서는 2천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되기도 했다. 유리제가 대다수이지만 호박이나 마노, 최고급의 비취곡옥 등도 있었다. 게다가 구슬들을 만들었던 사암제의 옥마지석(숫돌)도 발견되었다. 구슬이 ‘메이드 인 다라국’이라는 뜻이다. 풀밭을 쓱 훑어본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땅으로 돌아간다. 땅 속의 시간은 미지다. 오래된 봉분은 미지의 시간으로 가는 통로, 똑똑 두들기면 누군가 대답할 것만 같아서 흠칫 물러선다. 그런 무서운 일은 전문가들의 몫이고, 다만 오늘의 평화로운 곡선을 누린다. 왜 고분을 바라보면 언제나 평화로울까. 죽음 이후에 오는 것이 평화일까. 멸망 이후 다라 사람들은 어땠을까.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12번 88고속도로 고령IC로 나와 907번 지방도를 타고 합천 쌍책면으로 가면 된다. 박물관에 닿기 전 옥전고분군 이정표가 있는데, 박물관에서 산책로를 따라 고분군으로 가는 것이 더 좋다. 박물관 개관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오후 5시에 입장이 마감된다. 무료 입장이며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 추석날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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