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네 (아)저씨네] 내가 변하고 있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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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3   |  발행일 2018-07-13 제38면   |  수정 2019-03-20
20180713

한 20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봐주셔서 겨울 끝자락에 딸기 한 상자를 어머니께 사다 드렸다. 요즘은 겨울에 먹는 딸기가 그리 귀한 맛이 아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겨울딸기는 제법 귀해서 가격도 꽤 비쌌다. 아이들과 함께 드시라는 말을 분명히 했는데 어머니는 딸기를 아이들에게만 주고 어머니 몫은 왠지 드시지를 않았다. 왜 안드시냐고 여쭈니 나중에 먹을 것이라는 답을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큰 동서의 아이들이 할머니댁으로 놀러 왔다. 어디서 났는지 어머니가 딸기를 먹으라고 내놓으셨다. 그런데 딸기의 상태가 썩 좋지를 않았다. 약간 무르고 시든 듯했다. 알고 보니 며칠 전 내가 사다드렸던 딸기를 안드시고 아껴놨다가 큰 동서의 아이들에게 준 것이었다. 그 모습이 서른이 갓 넘은 나에게는 별로 보기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시면 될텐데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사온 사람 성의도 있는데….’ 사실 나의 성의가 문제가 아니라 약간은 궁상맞아 보이는, 할머니 특유의 그 모습이 내 눈에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치기어린 나의 판단일 수 있지만. 그런데 성주에 사는 친정어머니도 가끔씩 이런 행동을 보이곤 한다. 1~2개월에 겨우 한번 가는 딸을 위해 주위에서 맛보라고 가져다준 과일이며 채소를 곱게 싸서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내가 가면 건네준다. 그렇다보니 태반이 상하거나 시들거나 해서 집에 와서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두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는 안 해야지’ 하고 수십번을 되뇌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 봄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참외가 너무 맛있다며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셨다. 제법 굵은 놈이라 한 상자라고 하지만 5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몇개 안 되는 참외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나도 모르게 제일 큰 것 2개를 골라 비닐에 잘 포장을 해 김치냉장고에 고이 넣어두었다. 나머지 3개는 남편과 내가 먹을 것이라며 일반냉장고에 보관했다. 김치냉장고에 들어간 참외는 과연 누구의 몫일까. 아들 몫이다. 서울에 있는 아들과 군대에 있는 아들이 오면 주겠다고 챙겨놓은 것이다. 나의 이같은 행동을 보곤 스스로 놀랐다. 내가 두 어머니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어릴 적 음식 먹을 때마다 한 가지 가르친 게 있다. 좋은 것은 어른이 드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닭고기를 먹을 때 “닭다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먹는다. 너희들은 앞으로 먹을 일 많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먹을 날이 너희보다 짧잖아. 할머니와 함께 먹을 때도 잊지 말아라”라며 강조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부모임이 있어 아이들에게 저녁을 알아서 먹으라 했더니 프라이드치킨을 시켜 먹는다 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니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고 식탁에 치킨 상자가 있었다. 그 안에 닭다리 2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닭다리모음치킨을 먹었구나’ 생각했다.

다음 날 아이들에게 “다 먹지 왜 남겨뒀니”라고 물으니 “닭다리는 아버지, 어머니 드시라고요”라고 했다. 한마리짜리 닭을 배달시켜 부모 먹으라고 닭다리만 남겨둔 것이었다. “그래, 알았다”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이들이 대견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큰아이가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고 작은아이가 군대에 가고 난 후쯤이었다. 닭을 먹으면 닭다리를 아이들에게 넘긴다. “어머니는 닭다리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너희들 먹으라”며 밀어준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멀리 떠나있는 아이들이 가끔 집에 오는 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객지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인지 닭다리를 아이들에게 양보한다. 이런 행동에 대한 자기합리화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고, 나보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행복하다.

며칠 전이었다. 큰아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왔길래 시어머니에게 인사드릴 겸 해서 같이 시댁에 갔다. 어머니께서는 “큰동서 집에서 복숭아를 보냈다”며 김치냉장고에서 복숭아를 내놓으셨다. 유달리 복숭아를 좋아하는 큰아들의 식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이 보관했다가 내놓으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예전같이 궁상맞게 보이지 않았다. ‘저게 바로 부모 마음이지.’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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