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라이브 바 ‘이어부르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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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3   |  발행일 2018-07-13 제41면   |  수정 2018-07-13
음식보다 음악 중심 ‘펍 바’…창밖 가로수와 앙상블은 이 계절 특제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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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공연에 초대된 4인조 모던록밴드 매드킨 공연 장면.
◆펍 바 스토리

방천시장 안에 흥미로운 방식의 ‘라이브 바’가 탄생했다. 이 시장 한구석에서 한우숯불고기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한뉴스’. 그 본사 빌딩 3층에 위치한 펍 바 형식의 ‘이어부르기’가 바로 그 공간.

라이브클럽. 대구에선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 중이다. 이젠 연주자보다 손님이 먼저 무대를 점령한다. 그들이 반주기에 기대어 노래를 하면 연주자가 옆에서 반주해주는 일명 ‘오부리클럽’ 수준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연주인 중심의 라이브 바를 차린 두 명의 뮤지션. 바로 구본석과 채의진. 둘은 동갑(42)이고 음악적으로도 죽이 맞는다.

영국은 공연을 겸한 ‘펍 바(Pub bar)’가 지천에 널려 있다. 영국발 브리티시록의 저력도 바로 이런 라이브바에서 발원됐다고 볼 수 있다. 둘을 생각하면 비틀스가 맨 처음 돈 받고 공연을 한 영국 리버풀의 작은 골목 매튜 스트리트에 있는 ‘캐븐클럽’이 연상된다.

펍 바에선 고급진 음식이 안 어울린다. 음식이 아닌 음악이 중심. 다들 맥주를 야금야금 마시면서 분위기에 취한다. 그 취함의 중심에 뮤지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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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중심 라이브 펍 바 ‘이어부르기’. 최근 방천시장 내에서 태어난, 관객과 연주인 쌍방향 무대가 가능한 공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공간에선 빈티지 테이블과 목재 바텐도 멋지지만 무엇보다 밤이 오는 시각, 창밖 가로수 신록이 사랑받는다.

◆이어부르기 이야기

이어부르기는 록뮤직·재즈·포크록·포크송까지 다 품는다. 무대 복판에 드럼이 있다. 그 주변에 구본석이 사용하는 테일러가 있으며, 채의진은 최근 10년된 중고 마틴 통기타를 구입해 치고 있다. 별로 따지는 것도 없다. 정해진 것도 없다. 그게 매력이다. 손님도 단번에 주인과 친구가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처럼 제대로 된 맛깔난 펍 바를 만났다는 기분이 든다. 여긴 3층. 공기가 잘 소통된다. 칙칙하고 눅눅한 냄새가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창문만 열면 언제나 바깥 신록을 바텐에 앉아서 공유할 수 있다. 달구벌대로의 가로수 잎사귀의 한들거림이 술잔에 얼비친다. 실내는 주황빛, 창문 밖은 진초록이다. 그 앙상블이 술맛을 더 짙게 만든다.


방천시장 자리한 라이브 바
호박빛 목재 바텐과 月面 같은 테이블
록뮤직·재즈·포크록·포크송까지 만끽
육포·오뎅탕·먹태·피데기, 세계 맥주

방천시장 ‘벽화길 1호 버스커’구본석
손종우·김종락과 이어부르기팀 결성
퇴근후 펍바수다, 주말엔 김광석광장

대구 양대록밴드‘제임스’보컬 채의진
내공 키운후 구본석 이어부르기 가세

뮤지션에게 수익금 30% 출연료 지급
연주 관계자가 손님 몰고오기도…윈윈


반바지 차림에 헌팅캡을 쓴 구본석. 지그시 눈감고 김광석의 ‘외사랑’을 귀엣말처럼 들려준다. 다들 한 모금으로 박수를 대신한다.

이 집 테이블은 참 맛있다. 물 건너온 가구란다. 테이블 표면이 ‘월면(月面)’ 같다. 족히 10명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을 것 같은 호박빛 목재 바텐도 정겹다.

그동안 라이브클럽은 연주자 중심이 아니었다. 그냥 손님 위주였다. 연주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보통 업주가 매출을 올리려고 이런저런 조건의 개런티를 주고 뮤지션을 초청하는데 이때는 일단 손님 분위기에 맞추는 곡 위주로 흘러간다. 연주자는 자기 곡을 연주하고 싶은데…. 그러니 그냥 설렁설렁 노래하다가 떠난다. 꿈의 재즈클럽으로 불리는 뉴욕의 ‘블루노트’ 같은 게 간절하기만 하다. 그냥 행사만 줄을 잇는다. 정작 연주자 중심의 클럽은 자꾸 요원하고. 그게 지금 대구의 사정이다.

오픈 공연에 초대받은 대구의 4인조 모던록밴드 ‘매드킨’(리드보컬 김지현). 이들은 공연하고 수익금의 30%를 배당금처럼 받아 갔다. 발상의 전환에 뮤지션들도 적잖이 감동한다. 연주 관계자가 손님 겸 관객으로 찾는다. 자신이 새로운 음반을 냈을 때 여기에 오면 된다. 그냥 자기 손님 몰고 와서 공연하면 된다. 수익이 남으면 일부를 돌려받을 수도 있고. 일거양득이다.

기본 안주로 육포와 먹태, 오징어 피데기, 오뎅탕 등이 올라온다. 집에 남아도는 음식을 가져와 포트럭 공연도 할 수 있다. 연주자 윈윈 라이브클럽인 것 같다. 주류는 하이트진로가 수입하는 프랑스 맥주 블랑 등 세계 각종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프리미엄 생맥주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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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벽화길의 대표적 버스커로 불리는 구본석. 그가 친구 채의진과 손을 잡고 펍 바를 오픈했다.
◆구본석 이야기

구본석은 음악인답지 않게 공학에 능하다. 영진전문대 컴퓨터응용설계과를 나온 그는 구미산단의 한 업체에서 휴대폰 설계 기술팀 차장으로 일을 했다. 그의 첫 통기타는 막내삼촌 때문에 잡게 된다. 달달한 멜로디의 로망스 때문에 기타에 입문한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다운타운 라이브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동성로 시계탑 근처 광장호프에서 많이 놀았다. 대학에선 오름계란 음악 동아리에 가담한다. 이후 쭉 대구의 통기타업소를 전전한다. 하루에 5타임도 뛰었다. 많은 가수의 노래를 불렀지만 역시 그에겐 김광석이 딱이었다. 졸업한 뒤 바로 취업을 한다. 10년간 음악을 중단했다. 개발업무 때문에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풀타임으로 뛰었다. 그는 독립해 특수금속을 이용한 안경제조업체를 차린다. <주>이노디자인 대표가 된다. 2010년부터 2년 정도다. 돈이 생겨서 연습실을 경북대 북문 근처에 차린다. 이름은 ‘다락’. 음악 친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김강주, 유진우, 박창우 등이었다. 다락에서 다락밴드가 탄생된다. 구본석을 비롯해 박창우(기타), 김지현(보컬), 황나연(보컬), 송병준(드럼), 이유진(드럼)이 멤버로 짜인다. 시내 락왕, 데드제플린 등 지역 유명 클럽에서 공연했다.

그렇게 5년 정도 다락에 머물다가 어느 날 버스커로 변신한다. 지역에선 가장 발 빠른 버스커였다. 가장 먼저 버스킹을 한 장소는 경북대 캠퍼스 내 일청담이란 호수 주변이었다. 다락에 블루스기타리스트 김종락이 가세했다. 그를 통해 김광석 동상을 만들었던 조각가 손영복을 소개받았다. 그때 방천시장이 버스킹하기 좋은 공간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벽화길 1호 버스커로 활동했다. 이어 수성못, 동성로, 두류공원, 7호광장, 동촌유원지 등을 누볐다. 그런 과정에 김강주 등과 함께 서이프로젝트를 결성한다. 수성못 붙박이 버스커 밴드가 된다. 2016년 다락은 문을 닫고 본격적인 버스커로 변신한다. 그래서 김광석거리에 안착하게 된다. 직장은 안 다녔다. 2013년 사업도 그만둔다. 버스킹에 올인했다. 오후 5시부터 12시간 줄기차게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거의 중독 수준이었다. 매일 색다른 관객을 거리에서 만났다. 스스로 힐링이 됐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거기서 만난 손정우, 록밴드 두고보자, 김종락 등과 손을 잡고 이어부르기팀을 결성한다. 일종의 버스킹 코러스랄까. 이들을 위한 공연장 같은 펍 바가 바로 이어부르기다. 요즘 다시 직장에 나간다. 낮엔 구미산단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업소로 와서 오후 7시에 문을 연다. 오전 3시까지 이 단골 저 단골과 음악수다를 떨다가 귀가한다. 주말엔 김광석 동상이 있는 광장에 무대를 깐다. 누가 지치면 다음 선수가 바통을 이어받는 식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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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함께 2000년대 초 대구의 양대 록밴드로 불렸던 제임스의 리드보컬이었던 채의진. 요즘 이어부르기팀의 일원이다.
◆채의진 이야기

원래 꿈은 운동선수였다. 고교 시절 검도 선수였다. 하지만 음악 듣는 걸 더 좋아한다. 고2 크리스마스 때 한 친구 녀석의 성당 공연에 초대받았다. 그날 록사운드에 반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이후 행적은 다른 뮤지션과 거의 동일한 수순. 처음에는 음력대를 높이기 위해 소리만 질러댔다. 이불 덮고 괴성 지르기. 한마디로 무식했다. 당시에는 실용음악학원이라는 게 없었다. 그냥 선배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전부였다. 훗날 보컬을 전공하면서 올바른 발성 호흡법으로 매일 8시간 이상 강행군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음중유골’이란 밴드를 결성한다. 음악 속에 뼈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제대 후 2001년 ‘제임스’라는 밴드 보컬로 음악인생을 시작한다. 앨범은 2장의 정규앨범. 당시 대구 하면 아프리카와 제임스가 양대산맥이었다. 10년간 죽어라 공연했다. 돈은 못 벌었지만. 2010년 팀을 해체했다. 기타만 새로 영업해 2012년 ‘더 옐로우’라는 멜로디컬 모던록밴드를 만든다. 대표곡은 ‘난 너밖에 몰라’ ‘계단’ 등이다. KTX 개통 당시 협찬을 받아 전국 40여개 역사 순회 길거리 공연을 감행했다. 악기를 승합차에 가득 실었다. 그건 파격이었다. 내공 키우기에 엄청 도움이 됐다.

올해 들어 구본석을 만나서 이어부르기에 가세한다. 현재 펍 바 공동대표 겸 채의진 THE YELLOW 실용음악학원 대표와 계명문화대 생활음악과 외래교수로도 움직인다.

그에겐 요리 본능이 있다. 부모 모두 식당업을 했다. 한때 요리사가 꿈이기도 했다. 그는 나름대로 정리된 미감을 갖고 있다. 새로운 음식에 많이 도전한다. 현재 육회, 육포, 피데기, 먹태를 선보이지만 곧 ‘뼈 없는 닭발’ 요리도 낼 예정이다. 중구 대봉1동 13-29. 010-8852-269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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