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히로키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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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6 07:47  |  수정 2018-10-01 13:58  |  발행일 2018-07-16 제15면
20180716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기말고사가 끝나고 제가 가르치는 문학 시간에 소설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소설 작품과 비교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으로 아이들은 똑같은 이야기가 매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합니다. 그중에 아이들의 현실을 너무 잘 보여줘서 그 의미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영화가 한 편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23세에 최연소로 수상한 아사이 료의 소설을 영화화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입니다.

영화는 배구부 주장인 키리시마가 배구부를 탈퇴한다는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잘생기고 현대표로 뽑힐 만큼 뛰어난 배구 실력을 갖춘, 누구나 흠모하는 키리시마.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라면 당연히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아이.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는 ‘주인공’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보통’ 아이들의 이야기만 들려줍니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에 정작 키리시마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배구부를 탈퇴한 진짜 이유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키리시마의 부재 상태에서 비로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야구부원이었지만 그만둔 키리시마의 단짝 친구 히로키, 키리시마의 여자친구 리사와 그녀의 친구들, 히로키를 짝사랑하는 관현악부의 아야, 배구부의 코이즈미, 영화부 마에다 등이 그들이지요.

영화는 키리시마의 주변 인물 5명의 시점을 바꿔가며 진행됩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 아직은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지만 이게 과연 내신에 영향을 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지, 슬슬 대학 수험 준비에 뛰어들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특별하고 뛰어난’ 키리시마가 사라진 다음에야 ‘보통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가장 마음 아파한 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할 때였습니다. 키리시마와 같은 포지션의 후보 선수인 코이즈미는 키리시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키리시마만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배드민턴부의 미카는 단짝 친구 가스미의 스매싱 실력을 부러워하며 ‘역시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동아리 교실도 없는 영화부의 부장 마에다는 좀비 영화를 촬영할 계획을 세우지만 선생님이나 아이들에게 비웃음거리나 될 뿐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다른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친구가 미워질 때도 있지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가 고맙지만, 나보다 인간적으로 훨씬 성숙한 친구의 모습에서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나의 일상을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코이즈미, 미카, 가스미, 아야, 마에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좋아서 하는 동아리 활동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절대 자신의 삶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포기하지 말기를. 이것이 제가 이 영화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찾지 못하고 도망치는 아이가 있습니다. 히로키. 키리시마만큼 잘생기고 운동 실력도 뛰어납니다. 야구부를 그만두고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며 그저 키리시마의 배구부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지요. 키리시마가 사라진 공간에서 히로키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야구부 주장과 영화부 마에다를 발견합니다. 주장은 히로키를 볼 때마다 시합에 나오라고 합니다. 매일 밤마다 타격 연습을 하고 러닝을 해도 주장은 히로키만큼 실력이 없습니다. 프로팀 신인 지명 캠프에 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고 합니다. 히로키는 마에다에게 묻습니다. ‘여배우하고 결혼하고, 영화제에 나오는 감독이 될거야?’ 마에다는 아니라고, 영화감독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런 정도의 재능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니까 지금 열심히 하는 거라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신이 떠나온 야구부 연습장을 바라보며 히로키는 키리시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대답없는 ‘키리시마’를 대신해 학교의 모든 ‘히로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히로키,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해. 감정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신호야. 더 이상 상대와 나를 비교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가꾸는데 써.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얘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줘.’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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