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화를 다스리는 지혜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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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6 07:56  |  수정 2018-07-16 07:56  |  발행일 2018-07-16 제18면
분노의 끝은 후회…화나는 현장서 먼저 벗어나라
분노 표출해서 상황 달라지지 않아
링컨, 장문 편지 쓰며 마음 다스려
화 효과적으로 다루는 법 실천해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화를 다스리는 지혜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얼마 전 친척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마침 러시아 월드컵 F조에 속한 우리나라와 스웨덴과의 경기가 있어 친척들이 둘러앉아 같이 시청하게 되었지요. 4년간의 기다림 끝에 벌어진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패배하자 축구팬인 남자들이 불같이 화를 내고 실축한 선수들에게 분노에 가까운 말까지 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고등학생 조카 승호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은 선수들이 더 간절할 텐데 아빠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화를 낸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고등학생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의아해할 것 같아 조카 승호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전해봅니다. 승호가 중학교 때 자기보다 약한 친구가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때린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너도 가만히 있지만 말지” 하자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느냐고 하였답니다. 자신은 생각과 기분을 말로만 하고 그 친구랑 똑같이 행동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어느 새 친하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생각이 깊고 공부를 잘하는 승호는 운동을 좋아해 틈만 나면 아령을 들거나 농구를 하더니 서울 노원구 고등학생 팔씨름대회에서 일등을 했답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어 학교폭력서클 아이들이 승호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고 언짢아 하는 편이었는데 팔씨름에 지고 난 후 일진들도 슬슬 피해 다닌다는 겁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고 시비를 걸어도 묵묵히 약한 친구들의 운동과 공부 멘토가 되어준다는 승호가 진짜 멋진 학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화를 내면 조용히 “아빠, 왜 화를 내셔요.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화낼 일 아닌 것 같아요” 하고 말을 해서 가끔 뜨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어넘기면서도 요즘 뉴스나 학교에서 접했던 비슷한 사례들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며칠 전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다툰다는 말을 듣고 달려갔더니 두 사람 모두 폭발할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말리는 친구들을 뿌리치며 끝까지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끼리 싸우다가 교사가 나타나면 즉시 싸움을 멈추고 화난 표정을 감추려고 했는데 자기 입장만 말하는 걸 보니 그 순간엔 교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억지로 한 학생을 수돗가로 데리고 가서 세수하고 난 후에 남은 싸움을 하자고 했지요.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이제 하던 싸움을 하라고 했더니 이미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시키지 않아도 사과를 하겠다고 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학생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컵 갑질’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항공사 간부나 운전기사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했다는 대기업 회장 부인의 행동도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겠지요.

‘화병’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민간에서 사용되는 병명으로 다른 나라의 의학사전에도 우리말 그대로 등재돼 있을 만큼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우리 특유의 문화에서 기인된 정신의학적 증후군입니다. 이런 이유로 화를 너무 참으면 병이 될 수도 있으니 적절히 표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의로운 분노는 사회적으로 필요하므로 정의롭게 표출돼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같이 화를 내고 나서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한 적이 한번쯤은 있지요? 화가 날 때 상대방이나 상황을 반격하는 것은 쉽지만 대부분 후회로 끝납니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었는데도 생활지도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을 체감하며 화를 다스리는 법이나 참을성 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자문해봅니다. 화는 낼수록 손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참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므로 화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법을 익혀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 예로 화가 나는 상황에서 주저없이 벗어나는 것을 권합니다.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일컫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종종 부하나 친구들 때문에 미칠 듯한 분노와 화가 일어났지만 직접 대놓고 말하기보다 장문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진심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등 마음의 소리를 다 꺼내서 쓰면 그것을 상대방에게 보내지 않고 접어서 서랍에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훗날 그러한 편지가 여러 장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훌륭한 화풀이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오늘도 학교나 사회로 나가면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분명 기다릴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내가 화를 내면 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질까?’ ‘지금 화를 내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잠시만 생각해보고 높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것은 어떨까요. 임기숙<대구용계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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