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으로 수없이 신문지 긋다보면 나는 사라지고 없어”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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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8   |  발행일 2018-07-18 제22면   |  수정 2018-07-18
최병소 작가 개인전 우손갤러리
150호 대형 신문지 작품 첫 전시
20180718
최병소 작
20180718
최병소 작가

사실 별다른 소개가 필요없는 작가다. 연필이나 볼펜으로 신문지에 반복해서 긋는 작업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2012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6년 프랑스 생테티엔 근현대 미술관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현대미술제인 대구현대미술제 창립 멤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대구 작가다. 최병소(75).

대구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우손갤러리에서 최병소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제작된 적이 없는 150호 크기의 신문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술적 깊이’에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신문지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이 요구된다. 최근 신문이 아닌 신문용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작가는 “한 계절이나 한 해가 지나야 작품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군사정권 시절인 1970년대부터 신문지를 긋기 시작했다. “신문이 재미없어져서 지웠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신문이 제 역할을 못한 데 대한 실망이 신문지 작업의 출발인 셈이다. 신문은 작가에게 친숙한 재료였다. 작가는 “부친이 서문시장에서 미싱(재봉틀)상회를 했는데, 포장지로 신문을 사용했다. 어릴 때부터 신문을 봤다.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게 보였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시절 한동안 교과서 대신 큰 신문지를 받아 공부했던 기억도 있다. 작가는 “교과서로 쓰인 신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신문지가 자연히 너덜너덜해졌다. 그런 기억이 잠재의식에 남아 있어 작업으로 연결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에 진학했는데, 정작 작가는 “시시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서 이명미, 이강소 작가 등과 어울리면서 작업에 눈을 떴다고 했다.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은 애당초 없었다. 작가는 대학 시절 서양화 수업을 ‘엉터리 교육’이라고 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거짓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눈이나 개념, 가슴이 아닌 몸으로 그린다”고 설명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반복적으로 긋는 행위를 한다고 했다. 엉덩이의 힘이 중요하다며 웃기도 했다. 작가는 “생각을 지우려고 작업을 한다. 생각을 지우면 내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1980년대 들어 신문지 대신 종이나 이불천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물감도 사용했다. 미술판에서 사라져 작업에만 몰두했다. 작가는 “큐레이터와 대판 싸우고 10년 동안 화단을 떠나 작업만 했다”고 밝혔다. 1990년대 화랑에서 찾으면서 다시 화단에 등장한 작가는 신문지 작업에 매달렸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0년대 중반 파리에서의 초대전이 주목을 받으면서, 파리의 한 갤러리와 400점 제작을 계약할 뻔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가는 “400점 제작을 요구한 파리의 갤러리 주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당시 계약했더라면 죽을 때까지 신문지를 그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웃었다. 9월29일까지. (053)427-7736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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