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모든 게 최저임금탓인가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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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9   |  발행일 2018-07-19 제30면   |  수정 2018-07-19
[취재수첩] 모든 게 최저임금탓인가

지난 10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2018년 상반기 경제동향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권영진 대구시장과 박만성 대구국세청장을 비롯해 지역 금융기관과 대구경북중소벤처기업청, 고용노동청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모였다. 지역의 주요 기업 대표들도 여럿 참석했다. ‘경제동향보고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환경 변화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내는 성토장이었다.

“3명이 일하는 환경에서 1명이 줄어도 납품엔 문제가 없어요. 노력하면 3명분의 일을 2명이 할 수 있어요.”

일흔을 훌쩍 넘긴 지역의 한 경제단체장이 한 말이다. 사용자 측을 대표하는 단체를 맡은 그로선 최근 급격한 노동개혁으로 기업 경영상의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근로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탄탄한 논리를 갖고 신중하게 발언했어야 했다. 하지만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경영 논리라는 오점만 남겼다.

2019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들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재계는 일제히 경영 위기의 주요인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손꼽는다. 중소기업들은 ‘내수 부진’보다 ‘인건비 상승’을 더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인건비만 오르지 않으면 기업들은 고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기업의 운명은 주로 시장 흐름이 급격하게 바뀌거나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때 회자된다. 시장의 변화를 앞서 예상해 대비하고 신성장 산업의 흐름을 타지 못하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사업이 번창할 때일수록 혁신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기존 사업에 그냥 안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 업체였던 노키아를 비롯해 모토로라·팬택이 사라진 이유는 변화하는 휴대전화 시장에 미리 대처하지 못해서다. 100년 넘게 필름산업을 이끌었던 코닥도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 대응하지 못해 2012년 파산했다. 세계적 기업인 도시바가 매물 신세로 전락한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한 벤처신화로 손꼽히던 SK커뮤니케이션즈도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해 고꾸라졌다. 시장 환경변화에 맞게 혁신하고, 산업의 주기를 살펴 새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눈앞에 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등은 산업 전 분야의 기존 질서를 확 바꿀 거대한 산업 조류다. 핵심인 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 등은 기존의 모든 기득권을 갈아엎고 창조적 파괴를 선도할 것이 자명하다. 이같은 흐름 앞에서 ‘인건비 부담’은 큰 의미가 없다.

국내 경제는 구조적으로 쇠락해 왔다. 저성장이 만성화되고, 수출·내수·투자가 동반 위축되면서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경쟁력이 다한 산업이 빈사(瀕死) 지경이지만 이를 대체할 신산업은 수혈되지 않고 있다. 활력을 되찾으려면 부실산업을 과감히 구조조정해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경제 풍토도 바꿔야 한다. 각 경제주체들은 지금의 상황이 위기인 줄도 알고, 그 원인과 해법이 무엇인지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실체적 접근보다는 앉아서 최저임금 인상 탓만 하고 있다.

손선우기자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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