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탈원전의 그늘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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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0   |  발행일 2018-07-20 제23면   |  수정 2018-07-20
[조정래 칼럼] 탈원전의 그늘

경남 함양군 백전면 40호 남짓한 산골의 한 마을은 어느 날 갑자기 두 쪽이 났다. 느닷없이 공사를 시작한 태양광 발전 시설에 대한 찬반 갈등이 반대 주민들의 군청 앞 시위를 초래하고 마을 초입에 현수막을 내걸게 했다. 마을 주민인 태양광 발전 사업자와 그 가족·친척들은 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찢기고 훼손된 현수막처럼 적의를 드러내고 내연(內燃)시키지 않았을까. 군청의 처분에 의해 공사는 일단 중지됐지만 사업자가 반대 주민들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송달하면서 송사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그 마을 사람들의 찢어진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깊은 상흔을 남기게 될 터이다.

태양광 사업이 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을 반목하게 한다면 우리 고유의 풍수지리는 물론 현대적 인문지리학에도 반한다. 본말전도다. 무엇보다 입지와 장소의 적합성이 문제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람으로 치면 머리 바로 위에 태양광 시설 허가가 어떻게 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태양광이란 화로를 머리에 이고 살아가야 할 판인데 그것을 용인할 수 있겠나. 마을 사람들의 동의가 허가 조건 중의 필수요건일 게 틀림없는데 사업자와 담당 공무원 간 짬짜미가 없었다면, 인장 도용 등 위계나 문서 위조가 없었다면 허가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정보 공개 청구 대상이자 내사 등을 통한 진상 규명이 꼭 이뤄져야 할 사안임이 틀림없다.

자본이 이치에 우선하는 슬픈 현실이다. 자연이 무너지고 인심이 훼절되는 아귀다툼 속에 적반하장이 분수를 모른다. 마을 사람들의 정당한 반대가 부당하다니…. 제멋대로 추진하다 공사에 제동이 걸렸는데, 쉽게 말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제풀에 입은 피해를 어찌 마을 사람들에게 전가한단 말인가. 되레 무고죄를 물어도 싸고,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반대 시위다 현수막 제작이다 해서 인적·물적 노력과 재화를 쏟아부었으니 손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잖은가. 마을 어르신들의 권위가 살아 있을 시절이었다면 이 같은 억지는 멍석말이를 당하고도 남을 불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반발이 전국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대개의 갈등은 공영개발이나 외지 사업자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 타협과 조정의 여지가 있고, 그 후유증 역시 치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안타까운 건 마을 사람들 간의 쟁투라는 점이고, 어느 일방의 희생 없이는 봉합이 어려운 사안이어서 더욱 꼬인다. 자칫 마을이 훼손되고 인심을 기반으로 한 마을 공동체가 고스란히 붕괴될 수도 있다. 마을 안에 한 태양광 시설이 시범 케이스로 안착을 하면 우후죽순 난립을 부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비단 한 마을의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태양광 발전 붐을 타고 너도나도 태양광 사업에 뛰어드는 건 자유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 현장 곳곳에서 마찰과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고 신재생이 아니라 자연의 ‘신파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면 그건 방임이다. 지난 장마 기간 태풍 ‘쁘라삐룬’과 집중호우로 청도군 매전면 한 태양광발전시설이 붕괴해 토사가 도로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임야나 마을 인근 산 등은 산사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태양광 발전시설 입지로는 부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가 주도·장려하고 공기업과 개인자본이 수익을 가져가는 태양광 발전사업은 자연수탈적이고 주민복리에도 반한다.

탈원전의 그늘이 온 국토를 뒤덮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반대’와 ‘강행’의 격돌을 조장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산골짜기까지 집열판으로 덮이게 했다. 문재인정부의 성급한 탈(脫)원전 정책이 적잖은 후유증을 낳고 있고, 앞으로 초래될 부작용과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수정과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 정부 역시 단기 성과에 급급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4기 건설계획 백지화 등을 밀어붙였다가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탈원전 정책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태양광 시설보다 마을 보존과 마을 사람들이 먼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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