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내 돈으로 창업하면 바보 소리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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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7


권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지원 예산은 지난해 대비 13.8% 늘어난 6천993억원으로 책정됐다. 이와 함께 7개 정부관계부처의 2018년도 창업지원 사업 규모는 총 7천796억원에 달한다. 또 서울시는 지난 3월 초 창업 기업과 재기 창업자의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1조2천억원 규모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금년 중에 2천억원의 혁신성장펀드를 조성한다는 창업 지원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렇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20%에 육박하는 체감 청년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성장정책의 엔진인 창업 열풍을 일으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현재 정부의 창업 지원금은 시장에 넘친다. 자금만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시설·공간, 멘토링·컨설팅, 인건비 지원 등 종류도 다양하다. 또한 창업자들에게 지원하는 정부지원금은 대부분 갚지 않아도 되는 보조금에 속한다. 창업경진대회에서 선정되거나 창업사관학교 같은 정부의 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요즈음 예비창업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내 돈으로 창업하면 바보 소리 듣는다”라는 말이 수긍이 간다. 창업지원제도를 설명하는 한 블로그의 제목이다.

하지만 창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창업자의 열정이나 정부의 지원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왜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작업장 한쪽 구석에서 눈물 젖은 빵을 씹고 있겠는가. 대표적인 벤처기업가인 판도라TV의 김경익 대표는 말한다. “내가 사업을 하는 마음은 창업을 하는 마음과 같다. 도전정신인 것이다. 배고픔인 것이다. 사업은 배부른 사람이 하기 힘든다. 배고프지 않으면 면벽광상(벽에 부딪혀야 생각이 떠오른다)과 같은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하버드의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는 “창업가 정신이란 한정된 자원을 초월하여 기회를 추구하는 것(Beyond resources controlled)”이라 설명한다. 창업가는 태생적으로 필요한 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보다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회 추구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위험 감수의 원동력은 창업가가 가진 절박감이다.

스타트업 칼럼니스트인 제프리 제임스는 위대한 창업가들을 직접 만나본 결과 모든 위대한 창업가는 용감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용감해야 안정된 일을 포기할 수 있고 용감해야 실패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용감해야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은 창업자의 열정과 정부의 지원을 넘어 창업자에게 엄청난 고통과 인내, 질릴 정도의 집요한 목표추구를 요구한다.

블록71(Plug-in@BLK71)은 싱가포르 스타트업의 심장이자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지라고 불리는 장소다. 관리를 맡고 있는 싱가포르 국립대학(NUS)의 NUS Enterprise는 스타트업들을 2단계로 나누어 지원하고 있다. 투자자와 엑셀러레이터들에 의해 철저히 걸러진 아이디어 수준의 1단계 스타트업들은 책상 하나에 무료 인터넷과 사무기기, 회의실을 24시간 제공받는다. NUS Enterprise는 6개월마다 한 번 스타트업 현황을 점검해 장기간 비워두거나 진전사항이 없을 시 즉각 퇴출시킨다. 아이디어가 구체화되어 투자를 받거나 매출이 발생하면 2단계 지원을 받는다. 독립된 공간을 최장 2년간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것이다. 단계별로 자금지원보다는 창업자의 자질향상과 창업아이템 업그레이드를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

세상에는 ‘없음’을 그냥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절박하나 용감하게 과업에 임했던 수많은 일론 머스크와 마윈, 그리고 정주영이 있다. 이들의 ‘없음’을 메운 것은 외부로부터의 작은 지원이 아니라 부족한 환경조건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이루어보려는 강력한 ‘소망’과 과업 실행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고정관념의 창조적 파괴’다. 이것이 정부의 창업지원프로그램에 가려져 창업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알맹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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