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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감포읍 전촌항 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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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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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의 싸움처럼 용굴과 파도까지 ‘으르렁’

옛날에 경주 시내에서 동해로 갈 때면 덕동호를 지나 추령을 넘어 작은 마을들의 버스정류장을 헤아리며 천천히 달렸었다. 2차로의 좁은 길은 구불구불했고 길을 품은 토함산 북동 자락은 본 적 없는 금강산보다 멋있었다. 그러면 길 끝에서 눈앞을 가로막는 솔숲을 만났다. 거기가 바다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토함산 터널이 뚫리고 빠르고 미끈한 국도가 생겼다. 가만 생각해보면 추령터널이 생긴 지도 이제 오래되었다. 그러나 요즘도 동해로 갈 때면 습관처럼 추령으로 향하는데, 터널을 지나 강촌 즈음에 다다르면 이상하게도 옛길을 잃고 국도에 오르게 된다. 그러면 길 끝에서 수평의 바다를 먼저 만난다. 솔숲은 바다 곁에서 터널로 열려 있다.

열기도 못 뚫는 솔숲터널 지나 전촌항
북방파제 입구, 해안 길 따라 산책로
軍 작전지역…일몰 이후엔 출입 통제

용이 승천할때 뚫린 4개의 구멍 용굴
담룡·사룡 함께 살며 오랫동안 싸움
구멍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평화로워


◆ 전촌리 전촌항

전촌 솔밭. 전촌리 새마을의 31번 국도 양쪽에 펼쳐져 터널을 이룬다.
산책로 계단을 오르면 전촌항의 긴 방파제와 전촌의 남쪽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솔숲의 터널 속을 달린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엄청난 열기는 이 터널을 뚫지 못한다. 소나무들의 육감적인 몸매 사이사이에 색색의 텐트들이 웅크리고 있다. 사람의 휴가 동안 솔숲의 신들은 그들의 휴가지로 떠나 숲속은 인간적인 느슨함과 쾌활함으로 가득하다. 숲은 100여 년 전 경주최씨 문중에서 조성했다고 한다. 숲속에 최씨 선대의 오래된 묘가 있다. 나무들은 해마다 조금씩 키를 늘렸겠지만 솔밭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거기에 있다. 숲 너머는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800m 정도로 추령터널이 뚫렸던 1998년에 개장했다. 송림의 바다는 감포읍 전촌리(典村里) ‘새마을’이다. 다른 마을보다 늦게 형성되었다고 ‘새말’ ‘새마실’ ‘신동(新洞)’이라 했다 한다.

솔숲을 지나면 곧 전촌항 장진(長津)마을이다. 마을은 김행남(金行南)이라는 사람이 개척했는데, 그때 해안에는 긴 갈대밭뿐이라 장전이라 했다고 전한다. 더 먼 옛날에는 이곳에서 담룡(潭龍 혹은 淡龍)과 사룡(蛇龍 혹은 巳龍)이 오래오래 싸웠다고 한다. 그래서 ‘장전(長戰)’이라 한 것이 변해 장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하늘 높이 솟은 말 조형물이다. 장진 북쪽 감포 가까운 언덕이 마치 큰 말이 누워있는 형상이라 ‘거마장(巨馬場)’ 또는 ‘거마산(巨馬山)’이라 부른단다. 신라시대 때는 왜군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병마(兵馬)가 주둔해 있던 곳이라 한다. 항구의 물양장은 공원이다. 크고 깨끗한 화장실과 야외공연장까지 있다. 주차된 차들은 많은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항구는 큰 편이다. 정박한 배들이 엄청 많다. 주민 대다수는 어업에 종사하며 어업인구는 400여 명, 어선은 60여 척이라 한다. 방파제에 낚시꾼 몇몇이 앉아 있다. 미풍도 없는 뜨거움의 한가운데에 참을성 있게 소금산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바다가 아니라 태양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 용굴

용이 승천할 때 뚫렸다는 구멍이 있어 용굴, 구멍 너머는 평화다. 구멍이 4개라 사굴 또는 사룡굴이라 한다.

전촌항 북방파제 입구에서 북쪽 해안 길을 따라 가면 바닷가 언덕으로 오르는 산책로를 볼 수 있다. 감포 깍지길 1구간에 속하는 길이다. 경고판이 있다. 이곳은 군 작전 지역으로 일몰 이후에는 출입이 통제된단다.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것도 금지다. 2015년에 개방되었지만 부대가 완전히 철수한 것은 아니며 민간인 출입은 잠정적으로 허용돼 있다.

언덕을 오르면 곧바로 군사시설이 나타난다. 뒤돌아보면 전촌항의 긴 방파제와 전촌의 남쪽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길은 잠시 산책로는 곧 그늘진 숲속을 오르내린다. 대나무가 우거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높은 암벽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 있다. 그 절벽의 10m 높이에 숨겨진 굴이 있는데 ‘죽공암(竹孔岩)’ 혹은 ‘대굼바우’라 한다.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들이 왜구를 피해 죽공암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마을의 강씨 처녀가 물을 구하러 내려왔다가 왜구들에게 발각되고 만다. 강씨 처녀는 주민들의 은신처를 끝까지 함구해 왜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주민들은 강씨 처녀를 기려 마을의 밭에 비석을 세웠는데 언젠가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곳곳에 초소가 있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단출하고 외로운 모습들이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바다는 내내 함께 나아간다. 저 아래에 기묘한 바위가 보인다. 검은 구멍을 가진 기암, 용굴이다. 용굴 해안으로 내려가다 우뚝 멈춘다. 한 중년 남자가 나체로 바닷가를 점령하고 있다. 인기척에도 꿈쩍 않는다. 돌도끼를 하나 움켜쥐고 용굴로 향한다.

용이 승천할 때 뚫렸다는 구멍이 있어 용굴, 구멍이 4개라 사굴 또는 사룡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굴은 담룡과 사룡이 살았다는 곳이다. 그렇게나 오래 싸웠다는 둘. 같이 오래 살면 당연히 싸운다. 파도가 제법 세다. 용들의 싸움처럼 용굴과 바다가 으르렁댄다. 깊이 들어갈 수가 없다. 굴 앞에서는 2개의 구멍만 보인다. 구멍 속에 수평선이 있고, 구멍 속에 해변이 있다. 구멍 너머는 평화다. 날씨가 쾌청하고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바다 속 몽돌들이 투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오늘 용굴의 바다는 심해 같다.

1970년대 해안 암초로 접근해 온 간첩 6명이 용굴 속에 지내면서 정찰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되었고 용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용굴 근처에는 사자머리를 닮아 ‘사자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보초를 설 때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바위 일부를 깨버렸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원래의 사자바위 형상을 알아볼 수 없다. 마을 어르신들은 사자바위가 용굴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사라진 것은 언제나 더 아름답다. 용굴의 정수리에 정복자처럼 초소가 앉아 있다. 해안의 점령자는 여전하고, 나는 돌도끼를 언제 놓아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경주IC로 나가 감포로 간다. 추령 쪽이나 토함산 터널 쪽으로 가면 바다와 함께 바로 전촌리다. 마을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전촌항 북방파제 초입 북쪽에 해안 산책로가 있다. 10여 분 가면 용굴이다. 용굴 일대 해안 산책로는 군 작전지역으로 군사시설의 촬영은 금지다. 일몰 이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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