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문명의 대전환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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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3 07:41  |  수정 2018-09-21 11:00  |  발행일 2018-08-13 제16면

인류의 미래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혹성탈출’과 같이 핵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지구를 그리고 있거나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와 같이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을 그리고 있거나, 아니면 ‘기억 전달자’와 같이 소수의 인간이 인간의 감정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는 문명을 그리고 있다. 인류에게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인류에게 유토피아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의식은 2천500년 전 예수와 부처·공자에 의해 찬란하게 발현한 이후 간헐적 진화가 있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진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톨레는 그의 저서 ‘나우’에서 바다생물에서 육지 생물로의 진화에 엄청난 진화의 압력이 있었다고 하였다. 지형의 변화에 의해 석호처럼 바닷물에 갇힌 생명체가 물이 점점 마르게 되자 그대로 있으면 물과 함께 사라져버릴 위기에 놓였을 때, 몇몇 생명체가 아가미호흡이 아니라 폐호흡을 하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육지 생물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의식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성의 발달에 따른 거대한 생산력과 낮은 의식수준이라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의식수준은 여전히 낮은데 생산력은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소멸시킬 만큼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사르트르는 ‘출구 없는 방’이라고 표현했다. 톨레는 이처럼 인류의 낮은 단계 의식이 변화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의식의 기능장애’라고 불렀다. 개별 에고의 문명이 시작된 지난 150여 년간 인류가 경험한 것은 분리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 자신은 결코 우리 세계에서 타당한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현대 문명이 목도하고 있는 능동적 허무주의다.

그러나 수피 시인 루미는 ‘고통의 치료제는 그 고통 속에 있다’고 하였다. 즉 인류가 처한 그 절박한 상황 속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출구 없는 방’ 그 자체가 방을 벗어나는 유일한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의 기능장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에고의 문명이 겪는 고통과 왜 그것이 출구 없는 방인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나’ 혹은 ‘참나’ ‘주인공’ ‘근원적 자아’ 등 피부 밑 자아(skin-encapsuled ego)를 벗어난 본래의 내 모습을 표현하는 말은 무수히 많다. 융은 이런 말들을 통틀어 셀프(Self)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자아를 섬에 비유하여 물 밖에 나온 육지를 에고라고 하고, 물속에서 다른 모든 섬과 육지로 연결된 부분을 셀프라고 불렀다. 셀프는 물 밖의 작은 에고를 벗어나 전체와 하나가 된 인간을 말한다. 물론 이때의 셀프는 문명 이전 자연 상태 속에 살던 인류와는 구별된다. 자연 상태 속의 인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지만 그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고의 문명에서 셀프의 문명으로의 전환은 에고의 문명이 완전히 소멸하고 셀프의 문명이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에고의 문명 속에도 문명 이전의 자연 상태, 즉 본능적인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셀프의 문명 속에도 문명 이전의 본능과 에고의 작용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셀프의 문명 속에서는 문명 이전의 본능적 삶과 에고의 작용보다는 셀프가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 다르다.

‘중용(中庸)’에는 “성실함에서 밝음으로 가는 것을 본성이라고 하고, 밝음에서 성실함으로 가는 것을 교육이라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김용옥은 “성(誠)이란 자연에서 문명으로 가는 과정과 관련되고, 교(敎)는 문명에서 자연으로 가는 과정과 관련된다”고 해설하였다. 그의 주장과 같이 우리는 이미 천명으로 받은 본성을 갖추고 있기에 자연을 본받아 문명을 만들고, 또 이미 문명에 소속해 있기에 교육을 통하여 다시 자연으로 회귀해야 한다.

이처럼 자연과 문명은 상호 교류적인 것이며, 문명의 발전이란 결국 인간 본성의 완전한 실현이다. 이제 인류는 교육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문명 대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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