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복절에 생각하는 한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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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5 00:00  |  수정 2018-09-21
20180815

 “한글작가가 무슨 뜻이에요?”명함을 전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아름다운 한글, 올바르게 쓰는’ 한글작가가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16년 11월. 원하던 잡지사에 입사했을 때다. “자료 조사 좀 디테일하게 해주겠어요?” “스케줄 컨펌 받았니?” “시간이 타이트하니까, 스피드하게 하자.”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대화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혼란스러웠다.
 

하루는 기사 마지막 교열을 하던 중 외국어 ‘크리미(creamy)’가 눈에 띄었다. 맥락을 파악해 상사에게 ‘거품이 풍부한’으로 순화하기를 건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비경제적이고 뜻이 확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언제부터 그들은, 아니 어쩌면 우리는 한글보다 영어에 더 익숙해졌을까.
 

기자란 본디, 글로 정보를 전달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직업이기에 적확한 문장과 올바른 표현을 위해서는 말글살이도 바람직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나 그곳에서는 신념을 지킬 수 없었고 더욱이 오염된 언어문화에 점차 익숙해질 모습이 두려워, 4개월 만에 잡지사를 나와 버렸다. 그때 경험이 계기가 되어 나만큼은 한글을 올바르게 쓰겠노라 다짐하게 되었다.
 

나에게 덧씌운 사명감 탓인지 글쟁이 유전자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TV 속 자막 한 줄, 대사 한 마디도 그냥 흘리지 못한다. 날마다 심해지는 외국어 혼용과 난무하는 신조어, 그사이 망가지고 일그러지는 한글을 보고 있자니 호흡마다 안타까움과 비통함이 섞여 나왔다. 그러던 중 문득,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도 생겼다. ‘올바른 한글 전도사’가 되어 방송 PD와 작가에게 바른 한글 사용법과 우리말 가치를 교육하는 일이다.
 

명함을 판 지 이제 겨우 2년이지만, 지금처럼 한글을 아끼고 보듬어 나간다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TV와 라디오에서 아름다운 한글이 투명하고 청명하게 흘러나오는 광경을, 오늘도 상상해본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35년 만에 일본의 속박에서 벗어난 역사적 날이자, 쓸모가 다하고 버려진 우리말 ‘한글’을 되찾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엄혹한 감시와 탄압 아래서도 한글을 끝까지 지켜낸 우리 선조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해보자. 무심중에 내뱉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어여쁘게 바라보고 기특하다고 토닥여주었으면 좋겠다.

이 미 나(아름다운 한글, 올바르게 쓰는 한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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