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벼락 맞은 지역경제…民·産·學 결집 ‘대정부 투쟁’

  • 남두백,송종욱,원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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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6 07:18  |  수정 2018-08-16 07:28  |  발행일 2018-08-16 제3면
경주·영덕·울진 주민 탈원전정책 반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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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원전지역 주민들이 지난 1일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피해대책 수립과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대책 수립 때 주민 의견 반영을 촉구하고 있다. (동경주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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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영덕지역 주민들이 지난해 12월28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을 위한 정부 공청회가 열린 한국전력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정부 에너지정책 전환 계획’에 강력 항의하고 있다. (울진군 제공)

정부 탈원전 드라이브는 경북 동해안 원전지역의 꿈과 미래를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할 것인가. 지난 6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이사회에서 발표된 경주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영덕 천지원전 1·2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방침은 경주·영덕·울진 등 원전지역 주민들의 ‘부도(富都)·부농(富農)’ 염원에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와 한수원은 경제성 미흡·경영 불확실성을 이유로 원전 폐쇄·백지화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은 이를 수긍하지 않고 있다. 한수원 방침이 발표된 이후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외침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도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와 한수원이 주민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지역발전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을 내려서다. 주민 반발은 최근 폭염 장기화를 계기로 대체전력으로서의 ‘원전 효용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원전이 자리하고 있는 경주·영덕·울진이 정부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입게 될 유·무형의 손실과 주민 목소리를 살펴봤다.

■ 경주
월성1호기 조기폐쇄 일방결정에
소송인단 모집 법적대응 들어가
오늘 원전범시민대책委 열기로


■ 영덕
천지 1·2호기 건설 무산 직격탄
연인원 32만여명 일자리 사라져
앞당겨 사용 지원금 해결도 숙제


■ 울진
신한울 3·4호기 백지화 가능성
범대위, 靑·정부 상대 강력항의
군민대토론회 열어 생존권 모색

◆‘탈원전’ 맞서 시민 힘 모으는 경주

한수원은 경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라 2022년까지 모두 440억5천만원(지역자원시설세 292억원·법정지원금 148억5천만원)의 지역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수원 직원 300명을 비롯해 협력업체 직원·경비인력 200명도 일터를 잃게 된다. 정부는 2015년 6월8일 ‘월성 1호기 계속 운전 지역발전 상생협력 합의서’를 체결, 2022까지 10년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주민 동의를 얻고 지역상생협력금 1천310억원도 지원했다. 하지만 한수원 이사회는 지난 6월 지방선거 직후 이사회를 열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단 한 차례의 주민 공청회도 없이 기존 합의 사항을 무시하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자 경주시민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신수철 동경주대책위 공동대표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로 입게 될 경주지역 피해에 대해 정부·한수원이 100% 보상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관련 대책을 수립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대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한수원 노조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신규 원전건설 백지화 무효’ 법정 투쟁에 참여할 소송인단을 공개 모집, 이사회 의결 효력정지가처분·업무상 배임고소(고발), 민사 손해배상 청구 등 3가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원전 조기 폐쇄로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우려되자 경주시는 16일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를 연다. 시민대책위는 21명(시·도 의원,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인 ‘맥스터’ 추가건설·원전해체연구센터 유치 등 정부 탈원전에 따른 지역경제 피해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앞서 동경주대책위원회(감포읍·양북면·양남리 최인접 5개 마을 대책위)도 이달 초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피해 대책 수립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정부가 적절한 보상과 경제적 피해에 대한 대안을 충분히 설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원전 6기와 중·저준위 방폐장을 수용하고 최적 입지 타당성을 갖춘 경주에 반드시 원전해체연구센터 등 원전 관련 연구기관들이 유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황상태에 빠진 영덕

경북도·영덕군은 영덕 천지원전 1·2호기 건설 백지화로 지역이 입게 될 직접적 손실액은 향후 가동 이후 60년 기준 2조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신규 원전 2기(1기당 140만㎾h)의 건설·운영에 따른 정부·한수원이 지급하는 법정지원금이다. 발전량에 따라 계산해 지급하는 기본 및 사업자 지원금 각 6천700억원을 비롯해 재산세·주민세 등 취득세 3천300억원, 지역자원시설세 1조 3천200억원 등이다.

사회·경제 등 간접적 손실액도 1조1천702억원으로 분석됐다. 영덕은 건설 기간 등에 초점을 둔 수치다. 여기엔 원전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건비 낙수효과를 비롯해 용역·구매대금 등 기회비용, 사회적 비용 등이 감안됐다.

무엇보다 연인원 32만여명에 이르는 지역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뼈아프다. 한수원에 따르면 통상 4년6개월인 원전 건설 기간 매일 200명(200명X365일X4.5년)의 고용 감소가 예상된다.

최근 영덕에선 천지원전 1·2호기 백지화 여파로 지난 수년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부동산 가격이 뚝 떨어지고 거래 또한 끊겼다. 마치 공황상태와 같다. 천지원전대책위 관계자는 “오랫동안 국가사업이라고 홍보해 놓고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린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면서 “이제 지역개발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2015년 정부로부터 받은 영덕군의 천지원전 특별지원금 380억원 회수 여부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군은 2013~2015년 지역 SOC개발사업 등에 292억원을 앞당겨 사용했다. 영덕군 관계자는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정부 건의사업과 영덕군 대안 사업들에 대해 관련 정부 부처와 계속 협의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덕군의 대안사업은 영덕에너지산업 융복합단지 조성·동해안 해상풍력산업단지 유치·농어업 팜 그리드 조성 등이다.

◆신한울 3·4호기 운명은

울진지역에서 추진 중인 신한울 3·4호기는 지난 6월 한수원 탈원전 계획엔 빠졌지만 정부의 백지화 의지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백지화가 결정되면 울진지역이 입게 될 직간접적 손실 규모는 모두 66조여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곳 주민의 정부에 대한 배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여파로 지역경제도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울진엔 모두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신한울 1·2호기(각 1.4GW)는 12월 및 내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추가로 건설 중인 신한울 3·4호기는 당초 지난해 8월 착공해 2022년 9월 3호기·2023년 4호기 완공을 염두에 뒀지만 지난해 12월 정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에 따라 중단된 상태다.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그동안 청와대·국회·산업부·경북도 등 관계 기관을 찾아 정부 조치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탈원전 반대 서명부를 청와대와 국회에 전했다. 모두 울진군민의 생존권 사수를 위해서였다. 이들은 지금 원자력 산업체·학계·노동계와 연대해 법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재복씨(47·울진군 북면)는 “정부 탈원전 가시화 전,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된다는 부푼 마음에 사업자금도 마련했는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면서 “국가가 철석같이 약속한 사업이 중단된다는 생각을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3·4호기 건설이 이뤄질 때까지 투쟁에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장유덕 범대위 집행위원장(울진군의회 부의장)은 “앞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추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 관련 울진군민 대토론회를 열고, 정치권에도 울진군민 생존권을 요구하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전찬걸 울진군수도 “장기적 국가에너지 수급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추진돼 온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되면 지역경기 위축·유동 인구 감소로 지역 발전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며 “정부는 스스로 약속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반드시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한수원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내고도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등 정부 탈원전 정책 이행에 따른 비용 때문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한수원은 올해 상반기 매출 3조9천656억원에 영업이익 2천268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20.5%, 영업이익은 75.9% 줄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은 원전 이용률이 하락하면서 전력 판매가 줄었기 때문이다. 기타 수익과 비용을 포함한 당기순손실은 5천482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6천696억원 당기순이익에서 올해 상반기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영업이익을 내고도 당기순손실을 본 이유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6기 백지화와 관련한 영업외비용 7천282억원을 2분기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영덕=남두백기자 dbnam@yeongnam.com
경주=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울진=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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