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하얀 코끼리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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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6   |  발행일 2018-08-16 제31면   |  수정 2018-08-16

옛날 태국의 어떤 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하얀 코끼리를 선물했다. 하얀 코끼리는 그곳에서 신적인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관리를 잘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선물을 받은 신하는 엄청난 유지비용이 들지만 버리지도 못하고 데리고 살 수밖에 없어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 왕이 징벌적 차원에서 하얀 코끼리를 이용한 것으로 돈만 많이 들어가고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를 일컬을 때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라고 한다.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물이 하얀 코끼리에 비유되기 시작했다. 2천34억원이 투자된 정선알파인스키장, 1천264억원을 들여 신축한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1천64억원이 들어간 강릉하키센터 등 수천억원의 시설물들이 관리주체도 결정되지 못하고 관리상태도 엉망인 채 방치되고 있다. 개·폐회식이 열렸던 올림픽플라자는 1천100억원을 들여 지었지만 활용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거돼 예산낭비라는 시비는 있지만 역설적으로 사후 관리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처지가 됐다.

시설물의 활용방안도 고민이지만 관리비용을 누가 감당하느냐가 더 큰 문제다. 정부에서는 자치단체가 맡는 게 원칙이라고 하지만 재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강원도나 강릉시, 평창군 등은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제대회가 치러진 도시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1조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의 시설물도 하얀 코끼리가 됐다가 인천시가 최근 주경기장 일대를 관광단지로 개발하는 등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15년 열린 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 선수촌은 아직도 문경지역 정가에서 선거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메뉴다. 6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가 중소도시 부동산 시장을 보고 달려드는 건설업체가 없어 결국 카라반으로 선수촌을 만들어 대회를 치렀다. 대회 경기장 등 주요 시설들은 체육부대나 문경시의 것을 이용했기 때문에 사후관리 문제는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지금도 당시에 선수촌을 건설했으면 분양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군인체육대회 시설물이 ‘하얀 코끼리’로 취급되는 사례가 없는 것이 어쩌면 큰 다행일지도 모른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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