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알박기 행정’

  •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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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0   |  발행일 2018-08-20 제30면   |  수정 2018-08-20
[하프타임] ‘알박기 행정’
사회부 차장

아무리 생각해 봐도 꼼수가 훤히 드러나는 ‘알박기 행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몇 번이고 물어봐도 고개를 젓긴 마찬가지였다.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비하는 대구시의 공원행정 얘기다. 꼬집어 말하자면 시가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공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정행위가 구차하기 짝이 없다는 소리다.

2020년 7월이 되면 공원 일몰제가 시행된다. 20년 이상 장기미집행시설로 묶인 공원을 자동으로 해제하는 제도다. 1999년 7월 헌법재판소가 ‘지자체에서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조성키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땅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하면서 도입됐다. 지자체가 개인 땅을 공원으로 묶어 놓고 하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은 잘못됐다며 공원으로 지정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개발하지 못하면 규제에서 풀어주라는 헌재의 준엄한 결정이다. 이 결정의 근본 취지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사유재산권 보호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시는 2020년 7월 일몰제에 적용되는 도심공원 20곳(앞산·두류·범어·학산공원 등)을 대상으로 도로와 연접한 가장자리 부분만 사들이는 행정을 펴고 있다. 예산이 부족해 다 사들이지 못하니 도로가와 맞물린 바깥쪽 경계지역만 매입해 공원으로 개발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통해 일몰제 시행 이후라도 공사차량의 출입을 막으면, 나머지 안쪽 해제된 공원부지는 굳이 사들이지 않아도 난개발을 피해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취지를 깡그리 무시하는 참 기막힌 발상이다. 내 땅임에도 20년 동안 제대로 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보상으로 공원용도를 해제하고 땅의 쓰임새를 넓혀주라는 게 헌재의 요구이자 판단이다. 근데 정작 땅은 매수하지 않으면서 진입로를 차단하고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니 과연 누구를 위한 지자체인가. 이러니 알박기 행정이란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는 이제라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얕은 수는 오히려 주민 반감만 고조시킬 뿐이다. 공원이 무작정 해제되면 난개발이 우려된다지만 관련법으로 관리하면 된다. 공원 일몰제 이후에도 국토계획법, 산지관리법, 도시계획조례 등은 여전히 상존함에 따라 불법행위에 대해선 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20년 만에 공원에서 해제돼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땅을 개발하겠다는 지주에게 통로를 가로막는 행정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그러면 지주들도 자기 땅에 울타리를 쳐 대응할 것이다. 사실 일몰제 이후 내땅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조치라며 울타리를 설치하는 행위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막을 권한이 없다. 공원 안쪽 지주들이 너도나도 울타리를 친다면 사람이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평소 공원 산책로를 운동 삼아 다니던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길이 막힌다면 가만있겠는가. 집단민원으로 번질 개연성도 다분하단 얘기다.

공원 일몰제 시행 시기는 앞으로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시 당국의 ‘알박기 행정’이 아니라 ‘알찬 행정’을 기대해 본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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