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갑질과 꼼수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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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0   |  발행일 2018-08-20 제31면   |  수정 2018-08-20

국어사전엔 ‘~질’을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또는 ‘직업·직책이나 행동을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풀이하고 있다. 풀무질, 가위질 등이 전자에 해당하고 도둑질, 강도질, 서방질, 선생질은 후자에 포함된다. 후자의 경우 훨씬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물론 갑(甲)질도 후자에 속한다. 한데 교사 전체를 모욕하는 듯한 선생질이란 말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굳이 직업에 ‘~질’이란 접미사를 붙인다면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고 태업과 파업을 일삼는 국회의원이 그나마 제격이 아닐까 싶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투척 사건을 보도하며 ‘Gapjil’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봉건 영주처럼 대기업 임원이 부하나 하도급업자를 학대하는 행위’라고 갑질의 뜻을 부연했다. ‘갑질’이 글로벌 신조어로 등극한 셈이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흑역사도 속속 드러났다. 갑질이 외국 언론에 회자되는 것도 민망한 일이지만, 일가족 전체가 ‘갑질 DNA’로 뭉쳐져 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대한항공뿐 아니다. 역시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박삼구 회장도 ‘기쁨조 여승무원’ 논란에 휘말리면서 갑질 오너 대열에 합류했다.

갑질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이번엔 마일리지 꼼수로 구설에 올랐다. 양 항공사가 마일리지로 탈 수 있는 전체 좌석을 3% 미만으로 제한한 것부터 사실상 갑질 행태다. 마일리지가 소멸하기 시작하는 내년 1월1일을 앞두고 최근 양 항공사가 마일리지 사용처 확대 방안을 발표했지만 또 꼼수를 부렸다. 다른 사용처에서 마일리지를 쓸 경우 마일리지 가치는 확 떨어진다. 이를테면 1만원 안팎의 영화관람권을 얻기 위해 3만원 상당의 마일리지를 써야 한다.

국회의 꼼수도 국적항공사 못지않다.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특활비를 없애면서도 ‘반쪽 폐지’의 꼼수를 부리다 국민의 분노를 샀다. 조삼모사의 전형이었다. 결국 폐지를 공식화했지만 ‘국익을 위한 최소한의 영역’은 예외로 한다며 특활비 일부를 살려뒀다. 알다시피 국회의원의 갑질은 단연 금메달감이다. 그렇다면 갑질 잘 하는 기관이 꼼수에도 탁월하다는 논리가 성립될 법도 하다. 아마도 갑질 DNA와 꼼수 DNA는 상통하는 모양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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