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 고맙다” 99세 노모, 칠순의 北 두 딸 보자마자 통곡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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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1 07:29  |  수정 2018-08-21 09:59  |  발행일 2018-08-21 제6면
65년 만의 재회 ‘눈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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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1차 이산가족상봉 환영만찬에서 북측 딸 정순씨(70)가 남측 아버지 안종호씨(100)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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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만찬에서 조권형씨(80) 가족들이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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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김광호씨(80·왼쪽)가 북측 동생 광일씨(78)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남측과 북측의 이산가족들이 65년 만에 20일 재회했다. 한맺힌 이별의 고통이 눈물로 넘쳐났다.

89명의 남측 이산가족과 동반 가족 등 197명은 이날 북한 금강산호텔에 도착, 2박3일간의 이산가족 상봉 일정을 시작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금강산호텔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단체 상봉에서 북측 혈육 185명과 만나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단체 상봉에서 남측의 이금섬 할머니(92)는 아들 리상철씨(71)를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들 상철씨도 어머니를 부여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전쟁통에 가족과 피란길에 올라 내려오던 남편과 아들 상철씨와 헤어져 생이별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상철씨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며 오열했다.


南 이산가족·동반가족 등 197명
금강산호텔서 2박3일 일정 시작
내일까지 6차례 11시간 함께보내
단체상봉·만찬·개별상봉 등 진행



남측 한신자 할머니(99)도 북측의 두 딸 김경실(72)·경영씨(71)를 보자마자 “아이고”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한 할머니는 전쟁 당시 두 딸을 친척 집에 맡겨둔 탓에 셋째 딸만 데리고 1·4후퇴 때 남으로 내려오면서 두 딸과 긴 이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들 모녀는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관식 할아버지(89)도 북측의 딸 연옥씨(67)를 만났다. 유 할아버지는 애써 눈물을 참은 반면, 딸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전 부인과 헤어질 당시 딸을 임신한 상태인지 알지 못했던 유 할아버지는 이번 상봉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딸의 존재를 알게 됐다.

어린 시절 헤어진 형제, 자매들의 만남도 이어졌다. 북측의 두 여동생을 만난 맏언니 문현숙씨(91)는 두 여동생에게 “왜 이렇게 늙었냐”며 말을 건넨 뒤 울음을 터뜨렸다. 문씨와 동행한 아들 김성훈씨(67)는 어머니와 이모들의 감격스러운 첫 대면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김혜자씨(75)는 북측의 남동생 김은하씨(75)와의 첫 대면에서 동생의 얼굴을 낯설어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진짜 맞네”라며 눈물을 쏟았다. 은하씨가 준비해온 모친 사진을 보고선 “엄마 맞다. 아이고 아버지”라며 목놓아 통곡했다.

남측의 누나 조혜도씨(86)와 동행한 조도재씨(75)는 휠체어를 타고 온 북측의 누나 순도씨(89)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울었다. 도재씨는 무릎을 꿇은 채 누나의 손과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고생하신 게 얼굴에 다 나오네. 살아계셔서 고마워”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6·25전쟁 중 북쪽으로 끌려간 국군포로 한 가족과 전시 납북자 다섯 가족의 만남도 성사됐다. 6·25전쟁 발발 당시 포로로 잡혀간 아버지의 생사를 수소문하던 이달영씨(82)는 북측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받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북측의 이복동생 리일영씨(남·48)와 리영희씨(여·48)를 만났다.

곽호환씨(85)는 전시납북된 형님의 두 아들 조카를 만났다. 곽씨의 형은 충북 제천시에 살다가 전쟁 통에 인민군 회의에 소집됐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홍정순씨(95)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남편 대신 조카들을 만났다. 홍씨에 따르면 공무원이던 남편은 6·25 발발 직후 북에 끌려갔다.

평북 용천이 고향인 이영부씨(76)는 작고한 두 형들의 자식을 만났다. 이씨는 전쟁 때 함께 남으로 내려온 부친이 서울 혜화동에서 동네 통장으로 일하던 1950년 9월 납북돼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고 기억한다. 장남인 줄 알았던 그는 1962년 모친이 생활고로 30대 후반에 요절하고 나서야 북에 형이 둘 있다는 사실을 고모에게서 들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북측 주최의 환영 만찬에서 다시 만났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2일까지 2박3일간 6차례에 걸쳐 11시간 동안 얼굴을 맞댈 기회를 가진다.

이틀째인 21일에는 숙소에서 오전에 2시간 동안 개별상봉을 하고 곧이어 1시간 동안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한다.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식사를 하는 건 과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산가족들은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 작별상봉에 이어 단체 점심을 하고 귀환한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2015년 10월 이후 2년10개월 만이다.

한편,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현재까지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5만6천862명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으로만 해도 2년10개월 만에 성사된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신청자 638명 중 1명꼴로만 상봉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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