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형 공유경제를 찾다] <5> 프랑스 ‘상카르트104’‘로베르네 집’

  • 노인호
  • |
  • 입력 2018-08-21   |  발행일 2018-08-21 제7면   |  수정 2018-08-21
파리 도심·외곽 유휴공간, 시민 문화예술 창작·향유 공간 활용
20180821
상카르트104는 장례식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주민과 공유하면서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80821
파리 시내 중심 리볼리가에 위치한 ‘로베르네 집’은 방치된 건물을 예술 명소로 변모시켜 주민들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 19구의 장례용품 제작소였던 ‘상카르트104(104 cent quatre·이하 상카르트)’는 오랫동안 버려져있다 2008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미술가들이 창작 아틀리에에서 자유롭게 작업을 하고 매년 대형 전시회와 축제, 공연을 연다. 특히 저렴하게 공간을 대여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고,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파리 시내 중심가 리볼리가에 위치한 ‘로베르네집(Chez Robert Libre)’ 또한 방치된 건물을 예술 명소로 변모시켜 주민들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술가의 지적 자산을 지역민들과 공유함으로써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과 가치를 자연스럽게 높이는 셈이다.

◆ 상카르트
장례식장,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개인연습실·공연장·사무실 갖춰
무료개방…매월 다양한 전시공연

◆ 로베르네 집
예술가 불법점거로 조성된 공간
무명 아티스트 최소 부담으로 사용
2주마다 외부작가 작품전시 진행


◆방치된 장례식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상카르트 건물은 1874년 지어진 이후 오랜기간 관이나 비석 등 장례용품을 만드는 공간으로 사용돼왔다. 1990년대 초부터는 장례식장으로 쓰이다 1997년 그 기능을 다하고 방치돼왔다. 파리시는 이곳에 1억2천만유로(1천550억여원)를 투입해 복합문화공간인 상카르트로 변신시켰다. 상카르트에는 당시 건물의 모습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상카르트가 개관할 당시, 파리 19구는 지역민의 60%가량이 정부의 보조를 받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문화에 취약한 환경이었던 19구는 상카르트로 인해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상카르트는 지역민과 예술가, 스타트업 기업들이 공간을 공유한다. 200석, 400석의 공연장을 비롯해 중앙의 열린 공간과 갤러리, 개인 연습실,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매달 다양한 공간에서 무용, 전시, 오케스트라, 뮤지컬, 서커스 등이 펼쳐진다. 지역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내 사회단체와 학교, 보육원, 복지시설 등과도 협력해오고 있다.

상카르트에 입주한 스타트업 기업들은 문화와 관련된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좀 더 효과적으로 대중들이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있다.

마리알리아 베스두제프 상카르트 기술혁신담당자는 “이곳에서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만든 제품을 전시해 반응을 살피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며 “기존의 예술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을 접목해 앱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점거 예술가 운동이 만들어 낸 창작공간

파리 시내 중심의 리볼리가 59번지는 화려한 외관 탓에 멀리서도 이목을 끈다. 알록달록한 외벽에 만국기처럼 장식물들이 달려있어서다. ‘로베르네 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예술가들의 점거로 만들어진 예술창작공간이다.

14년간 방치돼있던 이 건물은 1999년 젊은 예술가들이 숨어들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숨어든 예술가들이 또다른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주거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게 된 것. 이들은 무상으로 점거한 이 공간을 다른 사람들과 무상으로 공유하겠다며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이는 엄연히 불법이었다.

프랑스 정부와의 기나긴 싸움 끝에 2009년 합법적인 입주 근거를 마련, 개장식을 가졌다. ‘로베르네 집’은 당시 건물에 입주해있던 점포 이름을 따왔다. 파리시가 3년마다 점검하고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무상임대를 이어가고 있다.

방치된 건물에 처음 숨어들었던 3명의 예술가 중 한명인 가스파르 들라노에 로베르네집 대표는 “당시 파리의 월세가 너무 비싸서 일할 공간이 없었다”며 “‘빈집은 넘쳐나는데 왜 일할 공간이 없는가’라는 현실에 반발하는 일종의 불법 점거 예술가 운동으로 번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는 ‘에코노미크 파르타주’(economique partager·공유경제)의 개념이 한국보다 훨씬 일찍부터 정립돼있다. 주택, 건물 등을 누구나 같이 쓸 수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상 6층 규모 건물의 1층에서는 2주마다 외부 아티스트를 초청해 작품을 전시한다. 2~6층에는 아티스트의 작업·전시공간이 자유롭게 배치돼있다. 예술가 30여명이 한달에 150유로 남짓한 비용을 내고 공간을 사용한다.

가스파르 대표는 “일반 파리 시내 갤러리는 한달 임대료만 9천유로에 달한다. 하지만 여기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도 600유로 정도면 갤러리 전체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무명의 예술가들에게 최소한의 부담으로 큰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로베르네집에는 한국인 작가도 있다. 2014년 입주한 도수민씨(37)는 “파리의 중심부에서 한달 150유로만으로 개인 작업실을 구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장점”이라며 “개인적이면서도 조직적이고, 친화적이다. 각국의 아티스트들과 한 공간에서 교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한국처럼 회계처리나 활동보고 등을 하지 않고 단지 한달에 한차례 열리는 회의와 일주일에 한번 건물 안내원의 역할을 하는 등의 수칙만 지키면 된다. 자율적으로 운영되지만 모두들 이 공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큰 마찰이나 문제 없이 잘 운영된다”고 덧붙였다.

가스파르 대표는 “작가들이 매일 이곳에서 작업하는 동시에 방문객들을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고 시민들이 작품을 살 수 있는지 문의해오기도 한다”며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소통과 자유로운 예술 활동이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