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터 석조수로는 통일신라시대 첨단 소화시설”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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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1 08:15  |  수정 2018-08-21 08:15  |  발행일 2018-08-21 제10면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논문
“수조형 수로·물막이판 고정홈
화재시 신속한 급수 위한 노력”
“동궁터 석조수로는 통일신라시대 첨단 소화시설”
동궁 석조수로 배치도를 확인하고 있는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오른쪽). <박홍국 관장 제공>

[경주]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18호)의 동궁(東宮) 옆에 거대한 화강암을 이용해 매우 정교하게 만든 수로(水路)가 통일신라 때 대규모 소화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불교고고학)은 신라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신라사학보’(제41집)에 게재한 논문 ‘신라 동궁지 석조수로(石造水路)의 기능에 대한 고찰’에서 동궁터 수로를 소방시설로 규정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조수로는 107m로,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받아 월지로 흘려보내는 배수로로 여겼다. 이 석조수로는 너비 29∼30㎝, 높이 14∼15㎝, 길이 1.2∼2.4m인 다양한 돌을 요(凹)자 모양으로 파낸 뒤 이어 완성했다. 월지 서쪽 건물에서 시작해 아홉 번 직각으로 꺾이는데, 첫 번째와 다섯 번째 굴절 구간에는 길이가 각각 165㎝·90㎝인 수조형 수로가 설치됐다. 박 관장은 수로가 낙숫물을 받는 용도라면 수로 바깥쪽 석재도 패였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식수를 보관하거나 경관을 미화하는 용도도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 관장은 “수로가 지상에 노출돼 먼지와 낙엽이 들어가기 쉬워서 물을 식수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수로 규모나 깊이로 봤을 때 경관용으로 삼기에도 석연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한 수로라면 전돌이나 기와·자연석으로 만들면 된다”며 “화강암으로 공들여 수로를 조성했다는 데에서 누수를 방지하겠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석조수로를 조성한 이유에 대해 박 관장은 “석조수로는 회랑 내부를 지나기도 하고 건물 기단 앞에도 있어 통행에 방해되는 존재였다”면서 “경관과 아무런 관계없이 통행에도 불편한 수로를 굳이 설치했다는 점에서 석조수로는 동궁 창건자가 고심 끝에 창안하고 정확한 계산과 설계에 따라 만든 방화수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동궁 특정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물 10ℓ를 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한 결과, 석조수로는 4초에 불과하지만 월지는 최소 25초라고 분석했다. 목조건물의 경우 기둥 몇 개만 타버려도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천장에 불이 붙는 순간 거의 무너지는 특성을 고려해 초기진화의 중요성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석조수로에서 반경 40m 안쪽 범위에 남문과 회랑 내부 주요 건물이 배치됐다고 설명한 박 관장은 굴절 구간 두 곳에 있는 수조형 수로와 물의 흐름을 막는 물막이판을 고정한 홈에 주목했다. 고정 홈은 수로를 조성하고 운용한 사람이 일부러 물을 보내거나 차단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라는 것이다.

박 관장은 “동궁 석조수로는 매우 완만하되 물 흐름이 가능한 수준으로 설치했다는 점에서 고도의 토목기술이 발휘됐다”며 “연못이나 우물이 점이라고 한다면, 석조수로는 선을 이뤄 초기 진화 가능 면적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첨단 소화장치였다”고 결론지었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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