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의 알 권리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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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1   |  발행일 2018-08-21 제30면   |  수정 2018-08-21
[취재수첩] 국민의 알 권리
조규덕기자<경북부/구미>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구미지역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흉악 범죄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달 24일 ‘20대 여성 집단 폭행 사망사건’을 시작으로 ‘구미차병원 응급실 의사 폭행사건’ ‘임사체험(臨死體驗) 40대 여성 사망사건’과 최근 발생한 ‘상모동 마트 복면강도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 사건이 터졌다. 이처럼 흉악·엽기적인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질대로 커졌다. 한 시민은 “흉기를 든 강도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무서웠다”며 “구미지역에 매일 사건 관련 뉴스가 들려오니 더욱 불안하다. 이러다가 ‘범죄 도시’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각종 SNS에 올라온 구미 사건 관련 게시글에도 시민들의 걱정이 섞인 댓글이 수천 개나 달렸다.

강력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 경찰 못지않게 기자들도 긴장하게 된다. 신속보도라는 기본적인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한 뒤 보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기자들은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경찰에 전화를 걸어 취재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하는 경찰은 기자들의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다.

그러나 이번에 일련의 강력 사건을 취재하면서 무더위만큼이나 기자들을 힘들게 한 건 바로 경찰의 ‘불통(不通)’이었다. 통상 경찰이 사건 전후 언론에 배포하는 브리핑 자료에는 ‘보다 자세한 내용이나 취재를 원할 경우 연락하라’는 문구와 함께 형사과장이나 사건 담당자의 연락처가 공개된다. 하지만 기자들이 전화를 걸면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일부 기자들이 가입된 단체 채팅방에는 ‘OO과장과 도무지 연락이 안된다’ ‘이럴거면 연락처는 왜 적어 놓은 것이냐’는 등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물론 수많은 기자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치는 것을 감안하면 전화를 받지 못한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전화 연결이 됐음에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찰의 무성의한 답변은 취재 기자로서 참기 힘들었다. 일부 경찰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냥 수사를 하고 있다”며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용의자를 특정했느냐”는 질문엔 코웃음을 치며 “누군가는 쫓아다니겠지” “아는대로 (기사를) 쓰면 됩니다” 등 조롱 섞인 말투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이를 두고 상당수 기자들은 “경찰이 사건에 대한 정보 제공을 보류할 순 있지만 너무 지나치다”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런던 경찰청장을 지낸 로버트 마크경은 경찰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단란하고 행복하지는 않지만 오래 지속되는 결혼생활”이라고 표현했다. 서로 수행하는 역할이 달라 때론 충돌할 때도 있지만 경찰과 언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바로 ‘국민’에게 있다. 언론에 있어서 경찰은 중요한 정보원이 되며, 경찰로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거나 수사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데 있어 언론을 결코 무시할 순 없다.

언론인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존재한다. 작금의 행태는 구미경찰이 국민을 얼마나 업신여기는 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디 언론과 경찰이 국민을 위해 소통(疏通)하며 공생(共生)했으면 한다.
조규덕기자<경북부/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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