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시민의식, 교육이 답이다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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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30   |  발행일 2018-08-30 제30면   |  수정 2018-09-21
폭염 때 백화점에 사람 몰려
내려가는 거 타서 자리 잡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북적’
임신부·노인은 이용 힘들어
타인 배려 시티즌십 갖춰야
20180830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폭염이 한창이던 이달 초, 반가운 손님이 왔다. 베트남에서 대구로 유학 와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공학자인 남편과 함께 영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이다. 10여 년 전 ‘대구경북 결혼이주여성 적응 교육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할 때 베트남어 통역으로 대구와 경북도내 곳곳을 한 팀이 되어 거의 1년 가까이 같이 다녔던 오래전 인연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김에 유학생활을 했던 대구도 둘러보고 지인들도 만나보고 싶다며 연락을 했다. 남편과 아들딸 남매와 함께 오겠단다. 한국을 떠난 후 얼굴 보는 것이 거의 10년 만이다.

짐도 있고 아이들도 있어서 동대구역사와 연결된 백화점 식당가에서 만나기로 하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주차하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 휴가철에다 폭염을 피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쇼핑 겸 피서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린 탓이다. 지하주차장 제일 마지막 층에 겨우 주차를 하고 8층 식당가로 올라가기 위해 승강기(elevator) 앞에 섰다. 승강기 앞 대기공간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약속 시간은 이미 훌쩍 넘어 있었다. 어린 아이들 데리고 기다리고 있을 생각에 마음이 급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문자를 넣었다. 약속한 식당 앞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번호표를 받고 아직 대기 중이니 천천히 오라는 답이 왔다. 승강기 앞에 줄 서 있는 사람 수를 가늠해보니 앞으로 세 번째 차례 정도에는 승강기를 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승강기의 문이 열릴 때마다 이미 만석인 것이다. 각 층마다 올라가는 승강기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내려가는 승강기를 타고 와 다시 올라가길 반복하다 보니 정작 마지막 층에서는 매번 문이 열릴 때마다 한두 사람 정도만 탈 수 있거나 아예 한명도 타지 못하고 올려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넉 대의 승강기가 모두 비슷한 사정이었다. 또 다시 30분 가까이를 기다려 겨우 승강기를 탈 수 있었다. 타고 돌아서 문밖을 보니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 임신부, 어린 아이와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혼자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비집고 탈 수 있었지만 어르신과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은 따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을 터이고, 덩치가 큰 유모차는 더더욱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어느 한 사람 유모차 먼저, 임신부 먼저, 어르신 먼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탈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여겼을 것이다.

백화점 안에서만 근 한 시간이 걸려 어렵사리 만난 그녀와의 만남이 말할 수 없이 반가웠지만 승강기 앞에서의 그날의 경험은 이후 내게 한동안 시민의식에 대한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유모차를 끌고 왔던 아기엄마들은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라는 걱정에서부터 ‘나부터라도 유모차가 먼저라고 말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는 자책에다 ‘올라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내려가는 승강기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할까’ ‘다른 선진국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까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 재단에서 대구시 용역으로 지하철 역사를 모니터링했던 사례도 떠올랐다. 승강기를 기다리던 노인 몇 분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다가오는 걸 보자 “빨리 문 닫아라. 휠체어 온다”고 했단다. 어떤 장애인은 시민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 30분 이상 승강기를 기다린 적도 있고 어떤 때는 이를 보다 못한 역장이 승강기를 잡아줘서 타고 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세상인심이 각박해지면서 타인을 배려하면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 확산되는 것 같다. 답은 세대별 시민의식 교육인 것 같다. 약자를 배려하고 인권 및 평등 감수성을 높여 타인과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시민의 권리 못지않게 책임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티즌십(citizenship)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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