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단양 남한강과 도담 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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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  발행일 2018-09-07 제37면   |  수정 2018-09-07
석문밖 느림보 강물에 비치는 산과 들…우주의 거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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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신기한 남한강변의 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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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덕천에서 석문으로 가는 로드.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단양 남한강과 도담 삼봉
하덕천에서 석문으로 가는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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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의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었다. 단양 하덕천리로 흘러가는 남한강은 완연한 태극문양을 그린다. 산야는 온통 녹색이다. 그 아름다운 남한강은 더위를 먹고 숨을 헐떡이며 느림보처럼 흐른다. 무더위에 온열환자가 나타나고, 그중에는 아예 먼 나라로 떠나는 이승의 이별자들도 보도된다. 그럼에도 강은 흐른다. 이 혹서의 땀을 훔치면서 강은 환영을 만들고 길을 만든다.

하덕천리에 있는 느림보 강물 길 들머리로 들어서면서 나는 그 산야에 독 오르게 핀 야생화가 남한강변에서 폭설로 변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팔짱끼고 눈 속을 걸어가는 환영으로 나타나 손등으로 두 눈을 씻고 본다. 의식은 무의식의 대극이다. 폭염에는 폭설이 환영으로 나타나고, 폭설에는 폭염이 환영으로 나타난다. 저 강물처럼 낮게낮게 자꾸 내려가, 강물 밑까지 가서 보이지 않은 소용돌이가 되고 들리지 않는 함성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높은 곳에 설 수 있는 대극의 심리를 만든다. 말하자면 마음이 낮아지고 낮아져서, 무욕해야 저 하늘의 끝까지 올라가서 우주의 실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느리게 흐르는 강물은 그런 차원에서 우주의 거울 역할을 한다. 저 느림보 강물에 하늘의 구름이 비치고, 들과 산 그리고 온갖 사물이 비치듯이, 나도 느림보 강물 같은 마음으로 낮게 더 낮게 걸어가면 거기에 우주가 다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잠깐사이 길을 잘못 들었다. 제법 큰길인 데도 그 끝은 밭둑이 되고 더 이상 갈 수 없다. 돌아서 나온다. 길은 늘 그렇다. 불타는 열망으로 길을 따라가도 길은 졸지에 사라지고 거기에 아득한 절벽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 새 길을 찾아야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길은 가야 한다.

강물길, 작은 산모롱이, 야산 데크길
나를 찾을 수 있는 생명 가득한 숲길
전망대에서 본 남한강 줄기 은빛비늘
도담삼봉 아련히 보이는 절벽 돌구멍
태극으로 흐르는 강물은 혼백의 문양
돌기둥 석문 넘어 보이는 고결한 풍경
수십여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딩 장관
단양팔경 제1경 도담삼봉 절경에 탄성
퇴계 이황 ‘詩心’흔들어 놓은 명승지


길은 중단이 없다. 그럴 수 없으니 길이다. 우리가 삶이 끝나면 길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삶의 새로운 길일 뿐이다. 이제 바로 걷는다. 강물 따라 가는 길이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걸. 작은 산모롱이를 돌고, 야산으로 오르는 데크 길을 오른다. 숲은 언제나 수채화다. 그리고 숲길은 추억 따위는 훌쩍 뛰어넘고, 멀리 더 아득하게 태고로 인도한다. 거기에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들이 그들먹하다. 숲길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의 믹서이고, 나를 찾을 수 있는 대응의 생명들이다. 우리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보지만,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 내가 아니다. 숲은 나를 비추어서 ‘나’이기도 하지만, 숲이 ‘나’는 아니다. 그러나 숲에 있는 ‘나’를 찾아서 만나게 되면, 숲에 있는 ‘나’ 아닌 것들을 모두 만나게 되고, 멀리 흐르는 강물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낮에도 은하를 볼 수 있으며, 시도 지을 수 있게 된다.

숲은 바로 우리의 생존이며 실존이고, 현실이며 시인의 낭송시다. 몇 년 전 문학행사에 갔다가 대구시낭송협회 이유선 회장의 낭송시를 들은 적 있다. 문인수 시인의 ‘쉬’였는데, 얼마나 달디 단 리듬이었는지 그 시적인 의미와 함께 미망에서 깨어나는 각성의 희열을 느낀 적 있다. 시(詩)는 신(神)의 말씀이고 낭송(朗誦)은 신의 음성이라는 양자가 하모니를 이룬 시간의 피크였다. 그럭저럭 전망대에 도착한다. 참 절묘한 자리다. 누가 더 느리게 걷는가 하고 미적미적거리던 남한강 줄기가 은빛비늘을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은, 바로 현장을 환상으로 전환한다.

아련하게 보이는 도담 삼봉과 강물이 흐르는 절벽으로 큰 돌구멍, 즉 석문이 보인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완전하게 태극으로 흐르는 남한강의 느림보 강물은 아름다움이자 우리의 철학이고 혼백의 문양이다. 대단한 뷰 포인트다. 그런데 동남 방향 하늘에서 무언가가 날아온다. 단양의 자랑거리인 양방산 활공장에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딩, 그것도 20여 개가 동시에 허공을 나르고 있다. 나는 이때끔 이렇게 많은 패러글라이딩이 한 번에 공중에서 날아가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다. 지금 눈앞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정녕 잊지 못할 하나의 음각으로 뇌리에 각인될 것이다.

나는 그 황홀한 구경으로 시간의 바닥에 가라앉고 말았다. 불교에서는 저 허공이 우리의 참 모습이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모두 허공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잖는가. 나는 그 패러글라이딩의 비행 장면을 보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 말고도 순간순간이 영원이라는 알쏭달쏭한 말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우리 몸이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라는 가설에서 추론한 현상학적 해석이다. 그러한 논리를 느림보 강물과 함께 따라가면 저 바다에 닿게 되고, 우리의 몸이 몽환포영이라는 바다의 성질과 같은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해인이다.

해인은 하나님이, 부처님이 보증을 하신 영원한 진리다. 그건 내 몸이 내가 아니고, 내 몸이 내가 아닌 것도 아니다고 한다. 대강 그렇다는 것을 인식하고 봇짐을 지고 자리를 턴다. 숲길은 항상 그렇듯이 내 자신 안으로 걷는 길이다. 만약 숲길이 없다면 당신의 인문학과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아름다운 시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로 시작되는 ‘가지 않은 길’이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두 개의 전망대를 지나고 단양의 명승 제45호인 석문 앞에 선다. 석문은 무지개 모양의 돌기둥이다. 석회 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 일부가 구름다리 모습으로 남아있다. 석문을 통해 남한강물뿐만 아니라 강 건너 마을 풍경이 보여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단순하지만 석문이 풍기는 이미지는 고결하다. 그래서 그런지 석문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날도 매우 복잡해 사진 촬영에 애를 태워야 했다.

석문을 떠나 가파른 철계단을 내려 도담삼봉에 도착한다. 단양팔경 중 제1경으로 손꼽히는 도담삼봉은 일찍이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이 유년시절을 함께해준 훌륭한 벗이었다. 정도전이 그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은 것만 봐도 짐작할 것 아닌가. 그리고 퇴계 이황 선생의 시심(詩心)을 흔들어 놓은 명승지이기도 하다. 과연 소문대로 절경이다. 굽이굽이 흘러온 남한강물이 잠시 숨을 돌리면서 하나의 물돌이와 담(潭)을 만드는데, 그 강 위에 아름다운 수석 같은 삼봉이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게다가 도담삼봉에 작은 정자가 있어 인문학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의 감성은 바로 시와 수필의 격랑에 몸서리를 친다.

여기도 설화가 있다. 강원도 정선에 있던 도담삼봉이 단양으로 떠내려오자 정선의 관리들이 해마다 세금을 거두러 왔는데, 이를 억울하게 여긴 정도전이 도담삼봉이 되레 남한강의 물길을 막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해 정선 관리들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는 느림보 강물 길을 걸으며 직립원인의 꿈이 더 영글어감을 느낀다.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길 따라 걷게 하고, 거기에서 행복의 의미를 더한다. 내가 나이면서 내가 아닌 것을 아는 것도 길 위에서다. 길은 모든 아픔에서 걸어 나오게 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그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온 생명을 다해 지치지 않고 ‘내가 아닌 것’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화가 반 고흐는 부모와 연인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내가 아닌 것’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에 진저리를 쳤다. 그 넘치는 꿈과 사랑, 환상을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자살하고 말았다. 길은 누구라도 무조건 긍정적 사랑을 해야 한다는 묵시를 주고, 죽을 때까지 포기 없이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는 예언을 준다.

글=김찬일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하덕천리 - 데크 오르막길 - 제1전망대 - 석문 - 도담삼봉 ▶문의 : 충북 단양군 문화관광과 (043)420-2556 ▶내비 주소 :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덕천리 (단양군 관광과에 문의 필요) ▶주위 볼거리 : 온달산성, 구인사, 만천하스카이 워크, 고수동굴, 천동동굴, 수양 개선사 유물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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