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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의 문화 담론] 사라지는 세시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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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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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음식 가득한 3代가족 밥상, 간편식 때우는 1인가구 혼밥 변화

음력 삼월 삼짓날 전후로 즐겨 먹었던 화전. 지역에서 열린 전통 화전놀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화전을 만들고 있다(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먹었던 오곡밥. <영남일보DB>
처서(處暑)가 지나면서 유달리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한풀 꺾이고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결을 느끼게 한다. 흔히들 처서 무렵엔 애호박 부침개와 마른 멸치에 독이 오른 풋고추를 넣어 졸인 호박볶음이 한여름의 폭염에 지친 입맛을 돋운다. 여기에다 밥솥에 넣어 찐 호박잎을 쌈장에 싸먹거나 호박순을 따다 끓인 된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처서 집밥에 밥도둑이 따로 없다는 얘기다. 텃밭의 들깻잎을 따다 졸인 깻잎찜이며 즉석에서 담가 먹는 깻잎김치도 절기(節氣)에 따라 처서 밥상에 오르는 밑반찬으로 제격이라고 했다. 알이 꽉 찬 옥수수와 강낭콩도 제철이다. 그래서 처서는 한여름 폭염에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주는 절기라고 한다.

이제 곧 추석도 다가온다. 폭염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절기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노후세대나 은퇴세대는 말할 것도 없지만 4050대만 해도 4계절, 24절기를 맞을 때마다 절기 음식을 향수처럼 그리워 한다.

음력 정월 대보름의 오곡밥과 고사리, 도라지 나물에 부럼이며 3월 삼짓날과 5월 단오절에 부쳐 먹는 부꾸미, 화전(花煎), 6월 유두절에 말아먹는 국수는 세시풍속에 따른 고유의 절기 음식이었다. 햇벼가 익어가는 추석이 다가오면 무쇠솥에 묵은쌀을 앉히고 장작으로 불을 때 느긋하게 뜸을 들이며 누룽지가 노릇노릇 익어가는 불밥을 지어먹는 풍습은 전통적인 집밥문화이기도 했다. 쌀뒤주를 비워야 추석에 푸짐한 햅쌀을 가득 채워 차례상에 올릴 수 있다는 세시풍속에서 유래했다.

대보름 오곡밥·고사리·도라지·부럼
단오절 부꾸미·화전, 유두절엔 국수
삼시세끼 온가족 둘러앉아 먹는 집밥
정성가득한 엄마의 손맛 그리운 추억

편리·간편함만 찾는 즉석음식 세상
오순도순 밥상머리 가족愛도 사라져
전통시장 추석대목 기대도 옛 이야기
부모가 객지 자식들 찾는 역귀성 행렬


지금의 2030세대는 그런 세시풍속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개가 결혼과 동시에 분가(分家)해 부모와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예전엔 적어도 조부모와 부모, 자녀 등 3대가 한지붕 아래에서 가풍(家風)을 지키며 살았다. 그것이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풍습이었고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를 지키는 법도(法度)였다. 그래선지 가정마다 일상의 집밥문화에도 가풍이 스민 맛과 멋이 있었다. 비록 구차한 살림이라도 삼시세끼 온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오순도순 먹는 밥맛이란 가히 현대의 간편식에 견줄 수 없다.

텃밭에서 가꾼 상추며 쑥갓, 참비름 나물에 보글보글 끓는 된장을 얹어 양푼이째 비벼 먹는 엄마의 손맛이 그럴 수 없이 즐거웠다.

올해는 폭염에 가뭄까지 겹쳐 흉작이 든 농가에선 깊은 시름에 잠겨 있지만 예년처럼 태풍이 스쳐가며 비가 올 땐 입맛을 다시게 하는 또다른 음식도 있다. 특히 군것질이 귀하던 시절,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엄마는 으레 입이 심심한 할배, 할매의 군음식과 아이들의 주전부리를 위해 부엌에서 열심히 부침개를 부쳐 낸다. 특별한 재료도 눈에 띄지 않지만 포기김치며 부추며 감자·고구마 등 있는 재료 그대로 밀가루 반죽을 묻혀 구수한 들기름에 부쳐 내면 어중간한 낮끼니를 때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생활문화가 편리함을 위주로 발전해가는 요즘엔 그런 절기 음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부들이 귀찮아하는 탓도 있겠지만 엄마의 손맛이 우러나던 부엌이 사라지고 장작불이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군것질이 생각날 땐 냉동고에 쟁여둔 만두며 떡볶이를 꺼내 즉석에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고 심지어 된장, 콩나물국까지 간편식이 일상의 식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혼밥족이 늘어나면서 가족 간에도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간편식으로 혼밥에 길들여져 식탁에 마주앉아 오순도순 얼굴을 맞대는 밥상머리 가족애(家族愛)마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때 민족 대이동현상이 빚어지던 최대 명절 추석이 와도 이제 고유의 명절모습을 별반 느낄 수가 없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추석 단대목의 전통시장엔 차례용품을 마련하기 위한 주부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추석 대목을 별로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상인들의 얘기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일 등 차례용품과 간편식으로 포장된 추석 음식을 사다 차례(茶禮)를 지내는 풍속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에 체증현상을 빚기 마련인 고속도로 역시 귀성객보다 포장된 차례음식을 싸들고 여행을 떠나는 나들이객들로 더 붐빈다. 이제 조상님도 변화하는 세속에 따라 후손들의 여행지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간편식 차례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게 과연 전통적으로 대물림해온 숭모(崇慕)정신인가?

아직 살아 계시는 조부모, 부모님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추석 전날 객지에서 살던 슬하의 자식들이 우르르 귀성해 온가족이 모여 차례상에 올릴 각종 음식을 장만하며 얘기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모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던 그 시절은 이제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 늙은 부모들이 객지의 자식을 찾아가는 역귀성 행렬이 늘고 있다.

그나마도 아직 세시풍속을 고집하는 어른들은 무쇠솥에 장작불로 조리한 전통음식을 즐긴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이나 간편식보다 훨씬 맛이 있고 멋이 묻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집밥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노후세대는 아직도 전통적 집밥문화와 가풍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간편식에 길들여진 자식들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저 용돈이나 넉넉하게 쥐여주는 것을 최대의 효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 동경대학(동네 경로당)에 다니는 어르신들은 비오는 날이면 으레 예전의 손맛을 되살리며 손수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고 한다. 특히 탁배기(막걸리) 안주로는 그만한 군음식이 없다며 부침개의 맛과 멋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신다. 아아, 그리운 옛날이여!

이미애(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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